[생각] 영화보는 눈이 까칠해졌을까?

Posted 2006/05/20 10:49, Filed under: 생각

아래 다빈치 코드도 그렇지만, 요새 슬슬 영화에 대해서 딴지를 거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사실 최근에 극장에서 본 영화들은 만족도가 높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 한 두 달 사이에 본 게 브루스 윌리스 아저씨의 '식스틴 블럭', 류승범+황정민의 '사생결단', 그리고 그제 본 '다빈치 코드'인데, 식스틴 블럭은 꽤 재미있게 봤지만, 사생결단은 그냥 심드렁했고, 다빈치 코드는 아래 썼듯이...;;

나는 예전에도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극장에 찾아가서 영화를 보면 참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남들이 별로라고 하는 영화에서도 한 두가지가 괜찮으면 그 영화는 그 부분이 좋더라라고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다가 나는 불감증에 빠지게 됐을까.

... 시쳇말로 때깔좋은 돈 많이 들인 영화에 질려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올드보이', 외국에서는 '반지의 제왕'이 한 획을 그어버린 것 같은데, 문제는 이 둘은 대단히 좋은 영화였지만, 그 뒤로 오히려 영화판을 망쳐버린 게 아닌가 하는 그런 느낌마저 든다.

'올드보이' 이후(혹은 '살인의 추억'이후?) 우리나라 영화들은 '웰메이드'를 위해 달려나갔다. 기존에는 보도 듣도 못한 영상과 음향들이 스크린에 가득 찼고 배우들은 대부분 맡은 역할 이상을 소화했으며 화려한 편집과 깔끔한 후보정 작업들이 이를 뒷받침했다. 올드보이 풍의 '쎈'(폭력이든 성이든) 장면들은 덤으로 껴들었다.

'반지의 제왕'이 대박을 터뜨린 후에 외국, 정확히는 할리우드 영화들도 비슷한 전철을 밟아버린 듯 하다. 사람들의 눈높이가 올라갔기 때문인지, 다들 화려한 미술과 엄청난 CG를 동원해서 때깔좋은 장면을 만들어내야 한다라는 강박증에 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결과? 영화들이 다들 비슷비슷해져버렸다. (말하기가 조금 조심스럽지만) 비유하자면 성형수술로 다들 비슷해져버린 연예인들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보면 '예쁘다'라고 생각은 들지만, 그 얼굴이 그 얼굴같고 딱히 기억나는 얼굴이 없다. 나는 여자 연예인들의 성형을 별로 안 좋게 보는 편인데, 그 전에 전체적으로 예쁘다고 보기는 힘들어도 분명 '매력적인' 얼굴이라 할만큼 어딘가 눈길을 잡아 끄는 튀는 한 곳이 있는데, 그게 성형을 하고 나면 매끈하게 사라지고 다들 비슷비슷해져버리기 때문이다. 요새 영화들이 대체로 그런 느낌을 준다. 비슷비슷하다.

극장은 어떻게 보면 마음을 채워주는 식당일텐데, 아무리 보기 좋고 맛있는 음식이라 할 지라도 모든 식당이 한식집이라면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일까. 가끔은 양식도 먹고 싶고 라면도 먹고 싶고 그러지 않냔 말이다. (이는 최근 대작 영화들이 멀티플렉스를 독점하다시피 해서 다른 영화를 보기 힘든 상황과도 맞물려 있을 것이다. 국적에 따른 스크린 쿼터가 아니라 제작비에 따른 스크린 쿼터라도 주장해보고 싶을 지경이다; )

내게 '말을 걸어오는' 영화가 보고 싶다. 화면이 좀 구려도 착착 맞아들어가는 줄거리라도 보여주던가, 아니면 줄거리 다 포기하고 나는 영상만큼은 이런 거라도 보여줄테다라고 작정하고 나오던가. 그도 아니면 기술적으로는 거친 면이 있어도 자신의 목소리를 굵게 내는 영화를 보고 싶다.

* 그래서 당분간은 자체적으로 '제작비 대비 스크린 필터'를 시행해볼 셈이다.

ps : 조금은 더 개인적인 이유로. 극장이라는 상황 자체에 내 기대치가 높아진 부분도 있다. 정확히는 극장에 감으로써 포기하게 되는 기회비용이 높아졌다고 해야하나? 극장에 들어가지 않고 서로 시간을 보내면, 서로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하고 감정교환을 많이 할 수 있는데 반해, 극장에 들어가면 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런 걸 포기하면서 보는 영화인데 이거밖에 안 되나.'하는 생각이 나를 좀 더 까칠하게 만드는 듯 싶다.

2006/05/20 10:49 2006/05/2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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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루나 2006/05/21 10:45 Delete Reply

    '가족의 탄생' 보세요. ^^

    1. Re: # miru 2006/05/21 11:46 Delete

      나도 '가족의 탄생' 조심스럽게 추천.
      요즘 잘 만들어진 영화에 너무 익숙해져서인지
      흐릿하고 바랜 첫화면이 괜스레 낯설고 어설퍼 보였지만
      그래서 색다른 영화.. ^^b

    2. Re: # HaraWish 2006/05/21 11:59 Delete

      앗. 고맙습니다. 당분간 극장을 쉴까 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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