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폭우의 추억.
Posted 2006/07/29 16:14, Filed under: 기록올 여름 비가 참 징하게도 내립니다. 올림픽 대로가 도로 침수로 부분 통제되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요. 폭우로 무섭게 넘실넘실대는 한강을 보면, 추억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섬뜩했지만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렇게 냇가를 거슬러 올라가며 첨벙첨벙하는 정도로 놀고 있었는데... 제 슬리퍼가 벗겨져서 물에 떠내려가려는 겁니다. 순간 잡으려다가 놓치고 엉거주춤 주저앉게 되었습니다. 슬리퍼 잡으려고 점프한 것도 아니었고, 물이 어린애 종아리 부근에나 오던 곳에서 아주 잠시 주저앉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갑자기 둥실하며 뜨는 느낌이 나더니 삽시간에 가장 깊은 곳으로 확하고 빨려 들어갔습니다. 네, 빨려 들어갔다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겁니다. 눈 깜빡할 새에 가장 깊은 곳까지 갔거든요. 당시 수영을 못하니까 허우적대지도 못하고[footnote]물론 수영선수라도 급류에는 장사없겠지만요.[/footnote], 바닥이라도 딛고 서볼까 했는데 물살도 빠르고 바위에 물이끼까지 껴서 불가능하더라고요. 게다가 당시 제 키가 140cm 정도였는데 머리 위로 20-30cm 정도가 더 있는 것 같더라고요.
물살이 워낙 빨라서 허우적거릴 새도 없이 바닥에 발딛게 되면 차고 잠시 뛰어올라 고개 좀 내밀고 다시 가라앉고, 수면 위에 올라가면 살려달라고 외쳐보기도 하고를 한 서너 번 쯤 했습니다.
그러다가... 걸어나왔습니다. 다행히 그 냇물은 제가 빠진 곳이 가장 깊은 곳이었고 거기에서 조금만 아래로 가도 물이 무릎까지도 안 오는 곳이어서, 물살에 밀려 한 20m쯤 떠내려 오고 나니 더 이상 깊은 곳이 없었거든요. 정말 순식간에 빠졌고 순식간에 떠내려가서 순식간에 걸어나왔습니다. 나올 때보니까 학원 원장 선생님이 당황해서 손을 뻗고 있었고요. (생각해보니 바지 걷고 무릎 부근까지만 들어오셨던 것 같군요. ㄱ- 뭐 사실 그런 상황에서 괜히 무모한 용기를 부리는 것보다는 낫습니다만;)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별로 고통스럽지도 않았고 (물 속에 있었던 게 20여초나 되려나요?) 발바닥 약간 긁힌 것이랑 옷 젖은 것 빼고는 별 피해도 없었지만, 참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너무나 멀쩡히 제발로 걸어 나왔기 때문에 그냥 짧은 순간으로만 기억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운이 조금만 나빴더라도 굉장히 안 좋을 뻔 했습니다. 깊은 곳이 조금만 더 오래 있었다면, 혹은 물살이 그렇게 빠르지 않아서 깊은 곳에서 나를 얕은 곳으로 보내주지 않았다면... 굉장히 불행할 뻔도 했겠죠?
그 때 일 덕분에 '불어난 물'의 무서움을 알기 때문에 이후로는 비오고 다음 날 물가 같은 곳에는 가지 않지요. 깊이가 별로 깊지 않아도 물살이 빠를 경우, 제 아무리 힘이 좋아도 맞설 수가 없거든요. 당시에도 그리 가벼운 몸무게는 아니었는데 냇가 가장자리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확 끌어당기던 그 힘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트라우마까지는 아니지만, 이후로 비가 많이 내려서 잔뜩 불어난 냇물을 보면 그 때 생각이 나곤 합니다.
이제 휴가철이라 계곡이나 냇가에 물놀이 가실 분도 많을 것 같은데, 혹시라도 전날 비와서 재미없게 보내다가 다음날 맑다고 무모하게 물의 힘에 도전하시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비도 좀 적당히 와서 피해가 좀 적었으면 좋겠네요.
ps : 이 얘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당시 물살에 휩쓸며 허우적대면서 머리 속으로는 "아, 오늘은 이걸로 일기 써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ㄱ- 나중에 전말을 들으신 어머니께서는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그런 마음가짐 덕분에 별 탈없었던 것 아니냐는 말씀을 해주셨지만. 어쩌면 어릴 때부터 제 몸 속에 블로거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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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읽기만 했는데도 오싹하다. 예전에 파도 찍던 내 사진을 보고 걱정하는 코멘트를 남겨준 이유가 있었구나. 정말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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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조심 또 조심해야지. 물은 늘 조심해야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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