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 글 쓰는 법을 또 잊어버려서, 그냥 되는대로 정리하련다.
(전략) 7시간의 비행을 두 번이나 하고서야 현지시각 아침 8시 정도에 아델레이드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기 직전 하늘에서 본 아델레이드 시는 아기자기해보였고, 겨울이라 춥지 않을까 걱정했었지만, 날씨는 흐렸지만 겨울의 끝물이라 착륙 직전에는 살짝 꽃이 핀 나무들도 볼 수 있었다.
긴 비행에 몸은 지쳐있었고, 생각보다 날씨도 선선했고, 근 2주 정도의 일정이 막 시작하는 순간이어서 가벼운 흥분 상태로 입국 심사대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그 흥분상태는 바로 깨져버렸다.
아직 프랑스, 캐나다, 중국 정도만 다녀봤지만, 그래도 그 나라들에서는 들어오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느낌이 강한 편이었는데, 호주에서는 말 그대로 '성의 문지기' 느낌이 강했다. Welcome이라는 글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아침이라 입국 심사대 중 세 곳에서 심사가 이뤄졌는데, 그 중 두 곳을 호주/뉴질랜드인 내국인들에게 할당해놓고, 외국인들에게는 단 하나의 창구만 열어놓은 상태였다. 입국 심사는 한 사람 한 사람 굉장히 오래 걸렸고, 내국인들이 끝나고 나서 나머지 두 창구가 외국인들도 받으면서 비로소 줄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 있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보면 볼 수록 묘-하게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휴대전화, 카메라, 녹음 등은 어느 나라 입국 심사대에서라도 다 금지되어 있겠지만, 금지 뿐만 아니라 '벌금'이 부과된다라는 얘기가 적혀있었다.
거기에 벽면과 기둥 곳곳에는 "Protect Our Borders."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Our border. '저희 국경'... 'we'에 해당하지 않는 나로서는 기분이 좀 묘했다. 마치 성벽을 탄탄하게 둘러싼 사람들이 낯선 나를 앞에 두고 '적이냐, 아군이냐'를 가늠질하는 느낌이 들었달까? 물론 이건 내가 지나치게 해석한 것일 수도 있고, 입국 심사대의 목적 자체가 그런 것이니만큼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방문자에게 최초로 해주는 얘기가 'our'라는 단어라는 점에서 굉장히 배타적인 무언가를 느꼈다.
약간 긴장한 상태로 줄서서 심사를 계속 기다렸다. 그 와중에 방문자들에게 입국 심사 안내가 나왔는데, 살짝 놀라버렸다. 위험 물질이나 농산물, 유제품 등이 문제가 되는 거야 알고 있었는데, 통조림 햄 등 가공식품도 안 된다고 얘길 하는 것이다. 입국 심사서에 '귀하는 문제가 될만한 이러저러한 것들을 갖고 계십니까?'라는 것에 습관적으로 No No No... 표시를 해뒀는데, 흠칫해서 다시 읽어보니 "음식 - 원재료든, 요리되었든에 관계없이"라는 규정이 있었다.
문제는 내가 바로 직전에 싱가폴 공항에서 초콜릿 바를 봉지 째로 샀다라는 것. 가공식품인지라 전혀 문제가 안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앞에서 겁(?)을 주니 왠지 죄라도 진 것 마냥 찜찜하게 되었다.
그래서 입국 심사대에서 초콜릿이 있는데, 문제가 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입국 심사원이 그런 게 있으면 '음식'에 표시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른 건 없냐고, 잘 이해하는 거냐고, 영어 할 줄 아냐고 묻기까지 했다. -_- 초콜릿같은 것에도 이런 호들갑을 떨어야 하다니... 하며 심사대를 통과했는데, 그 때야 내 머리를 스친 것이 '호주'라는 '대륙'의 특성이었다.
호주는 대륙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대륙과도 이어져 있지 않은 지리적으로 섬과 같은 존재이다. 그 특수성 때문에 캥거루나 코알라 등 독특한 생물들이 따로 진화되어 나왔고, 이후 다른 대륙의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면서 호주 생태계의 그 특수성이 위기에 처해있다.....라는 걸 왜 입국 심사대를 넘어서야 깨달았을까.
입국 심사대를 넘어서도 경고문들은 계속 되었다. 문제 있는 게 있으면 신고해라. 신고 안 했다가 걸리면 220$ 벌금이다. 외국에서 사온 싸구려 목상 같은 것에 괜히 모험걸지 마라. 신고해라. 뭐 이런 문구들이 계속 있었다.
내 경우는, 조금 귀찮긴 했지만, 입국 심사대에서 음식에 대해 신고했기에, 세관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편하게 움직였다. 세관 담당에게 음식 부분에 체크 표시가 되어있는 입국 신고서와 함께 초콜릿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전했더니, 내 입국 심사서에 간단하게 표하더니 검색대에 내 짐을 통과시키는 걸로 나는 간단히 끝났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검색대에서 자신의 짐을 열어보이고 있었다. 연구실 동료는 손잡이가 나무로 된 망치를 들고 왔다가 문제가 되었고, 인삼 캔디도 세관의 눈을 피해가지 못했다. 중국 쪽에서 온 교수는 호주에 먼저 와있던 동료의 부탁으로 한약재-_-를 들고 왔는데, 이를 신고도 안 해서 아주 큰 문제가 되었다. 주최 측을 비롯해서 이 사람 저 사람이 들어가고 거의 한 20-30분쯤이 지나서야 세관에서 나오던데, 그만큼 까다로운 모양이다.
엄격한 세관. 이게 호주에 대한 내 첫 인상이다.
결론 : 호주는 자신들의 특수한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세관에서부터 외래종의 유입을 철저히 막으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가 될만한 것들은 웬만하면 안 갖고 가는 것이 낫고, 불가피하다면 미리 신고를 하는 것이 풜씬 편하다. 습관적으로 문제될 것 없다고 했다가 문제 더 커질 수 있으니, 그네들의 제도에 맞춰 주는 것이 필요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