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농구화를 샀다. 그동안 운동화는 커플로 두 번인가 샀지만, 농구화 구매는 작년 3월
이후 최초이다. 예전과는 달리 요새는 농구화를 농구할 때만 신는 편이라 잘 닳지도 않고, 게다가 이 '칩글라이더'라는 녀석이 나랑은 정말 찰떡 궁합이어서 이거 신은 뒤로는 다른 신발에 눈길조차 안 줬던 것이다.
칩글라이더에 큰 불만은 없었지만, 1년 반쯤 같은 신발을 신고 뛰다보니 '다른 신발은 어떤 맛이었더라?'하는 호기심이 다소 들었다. 그리고 때 마침 그 분(;)이 할인 정보를 전해주셨다. 르브론2가 좀 더 갖고 싶긴 했는데 사이즈가 없어서, 르브론 대신 멜로라는 심정으로 집어든 것이 바로 이 Melo 5.5.
Melo 5.5는
NBA 선수 카멜로 앤쏘니(Ca
melo Anthony)를 위해 만들어진 두 번째 신발이다. 두 번째 신발이면 Melo 2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5도 아니고 6도 아닌 5.5는 애매한 숫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이 신발 탄생의 비밀이 있으니, Melo 5.5는 기존의 에어 조던5와 에어 조던6에서 각각 아이디어를 따와서 만든 '퓨전'인 것이다.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멋진 말도 있지만, 조던 시리즈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조던8부터 열심히 신고 다녔었지만), 동시에 현재 카멜로 앤쏘니에게도 큰 관심이 없는 내게 Melo 5.5는 최근의 번쩍번쩍 화려한 신발과는 다르게 90년대의 향기를 솔솔 풍기는 친숙한 분위기의 신발정도로 다가왔다.
박스를 열어 신발을 처음 봤을 때도, '이야~ 이거 고등학교 때 신은 신발 같다'라는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고등학교때 휠라에서 나왔던 검정 스웨이드 재질의 발목높은 농구화를 한참 신고 다녔기 때문에, 왠지 모를 향수마저 느꼈다.
최근의 신발들과는 다르게 발목이 굉장히 높다. 한동안 발목이 다소 낮은 것을 신어서인지, 처음 신었을 때는 거추장스럽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발목이 높다고 꼭 발목지지가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ex. 조던 12 리트로) 다소 걱정을 했는데, 발 뒤쪽의 저 절벽처럼 깎아내린 부분과 아래 쪽의 힐컵이 발목을 참 잡아줬다.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만족.
사이즈는 290으로 했는데... 역시나 발볼이 좁았다. 나이키가 발볼이 좁은 소위 칼발용 신발을 만드는 편이기도 하지만, 내 발이 정말 옆으로 한없이 넓은 마당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이쯤에서 칩글라이더의 그 넉넉했던 토박스가 그리워지기도 했는데... 뭐 일단 신어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발볼에 맞춰 295로 했다면 길이가 남아서 신발 안에서 발이 헛도는 현상이 발생했을테니까 (조던12를 그래서 295로 샀었는데, 계속 발에 안 맞는 느낌이었다.), 발에서 헛도는 것보단 발볼이 조금 조이는 쪽이 낫다. 재질이 재질인만큼 신다 보면 좀 늘어나겠지.
나이키 하면 '쿠션'이 떠오를만큼 나이키는 폭신폭신한 쿠션을 자랑한다. 멜로 5.5도 앞축 뒷축에 에어가 풍부하게 들어가 있었고, 중창도 꽤 두꺼운 편이어서 신으면 한 3-4cm정도 키가 커진 느낌이다. 예전에 고등학교 때에는 그냥 쿠션은 많이 들어갈수록, 중창은 두꺼울 수록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런 이유로 샀던 어떤 신발(이름도 잊었다.)은 동작을 참 둔하게 만들었고, 시합이 끝나고 나면 다리에 피곤함이 전해져 왔다. 그동안 신었던 칩글라이더의 중창이 너무 얇지도 않은, 너무 두껍지도 않은, 황금두께라고 생각해왔기에 이런 두꺼운 중창은 약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뛰어보니 앞축의 줌에어 때문인지 두꺼우면서도 반응은 민감했다. 호오. 신기하여라. 다리도 별로 안 피곤했고, 잘 만들었다.
바닥에는 가장 마찰이 많은 부분에 투명하면서 다소 끈~적한 소재를 사용했는데, 이 소재는 금방 닳아버린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저 부분에 배치했을 때 땅과 찰싹 찰싹 달라붙는 느낌을 준다. 아껴 신어야 할 것 같다.
예전에 새신발을 신고 좋아서 팔짝팔짝 뛰면서 평소에 안 하던 짓하다가 무릎을 다친 적이 있어서, 새신발을 신고 뛰는 것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더구나 발목을 덮어버리면서 중창도 두꺼우니 까딱하면 다칠 것 같아서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날씨도 좋고, 저 매력적인 신발이 '어서 나를 신고 뛰어줘.'라고 외치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절대 안으로 안 들어간다. 밖에서만 뛸테다."라는 다짐을 내게 몇 번이나 하고 서야 코트에 들어섰다.
처음 신을 때는 K1X 칩글라이더를 신었을 때의 그 쾌적함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통풍이 그리 좋은 신발도 아니고, 발볼도 약간 좁은 상태에다가 한동안 자유로웠던 내 복숭아 뼈를 탄탄한 구조물이 덮고 있었다. 칩글라이더가 '니가 움직이고 싶은대로 움직여. 나는 그걸 돕겠다.'라는 느낌이라면 이 멜로라는 녀석은 '나는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다. 니가 이런 것들을 해볼테냐?'라는 느낌이랄까?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의 어색함. 낯설음, 그리고 약간의 불편함이 사라지고
어느순간에서부터인가 나는 Melo 5,5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내 수비 상대가 좌우로 흔든다. 왼쪽? 아니, 오른쪽. 왼쪽으로 향하던 관성을 이기고 몸을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순간, 신발 바닥의 클리어 소재가 코트를 움켜잡아 멈추게 했다가 쿠션을 이용해 나를 튕기듯이 밀어준다. 좋아, 놓치지 않았어.
상대편의 패스를 쳐냈다. 공은 저만치 튕겨가고 있고 상대방과 나는 서로 한 번 흘깃 쳐다본다. 달린다. 앞축의 쿠션이 나를 통통 밀어낸다. 그래, 내가 잡았어.
슛이 림을 맞고 튕겨나온다. 조심스레 안으로도 들어가봤다. 땅을 박차고 올라갈 때 같이 밀어줬던 신발이 다시 내려오는 나를 탄탄하게 받쳐준다. 발목도 문제없다. 이거라면 괜찮다...라는 생각이 든다.
농구는 즐거웠다. Melo 5.5가 덩치 큰 가드, 포워드, 몸이 가벼운 센터 정도에게 좋을 거라더니... 부상의 트라우마 때문에 언제부턴가 나는 밖에서만 돌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외곽 슛과 상대편 가드 수비가 전부일 뿐. 멜로는 이런 나를 충실히 뒷받침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게까지 했다. 두꺼운 중창 덕에 키가 커져서인지, 아니면 약간의 자신감 때문이었는지, 혹은 같은 팀원들의 성향 때문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단순한 운이었는지 몰라도 오늘 나는 약간은 포워드 같은 경기를 했다. 단 한 경기로 섣불리 말하긴 어렵지만, 지난 1-2년간 습관이 된 내 방식이 조금이나마 변한 것에는 분명 이 신발의 공도 있다.
즐겁다. 이래서 사람들이 여러 신발을 신고, 각각 신발의 맛을 느끼나 싶다. 그래서 아쉽다. 내가 그 때 다치지만 않았으면, 가끔 돌파도 해봤을텐데, 그랬다면 이 멜로는 나를 어디까지 밀어줬을까.
몸 관리를 잘한다면, 나는 아마 5년 정도 더 농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간동안 멜로가 내게 좋은 짝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ps : 그래도 발볼이 아프긴 하다. 뒷축이 남아서 꽉 조여서 그런지 오른발이 욱씬욱씬. 길들면 좋아지겠지 뭐.
ps2: 그런데 아무래도 오른발 앞축의 줌에어가 깨진-_- 느낌이 든다. 하루 뛰었을 뿐인데.. 흑. 병행수입제품이라 AS도 안 되는데.
ps3: 사진은 모두 직접 찍었습니다. 갖고 가실 분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