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2006년 마지막날, 런던에 도착하다.
Posted 2007/01/20 17:58, Filed under: 기록기내 모니터를 통해 런던에 가까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착륙시간이 다가오자 비행기에서는 아쿠아리움에서 틀어줄 것만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음악을 틀어댔다. 하지만, 굳이 그런 음악이 없었다해도 런던의 야경은 충분히 몽환적이었다.
어느 때부턴가 창밖으로 보이기 시작한 불빛은 항구에서 도심으로 이동하면서 좀 더 촘촘해졌다. 자잘한 노란 불빛들 사이로 검게 보이는 것은 템즈강일테다. 도심을 가로지르며 구불거리는 것이 마치 불의 바다 위를 헤엄치는 거대한 검은 뱀 같아 보였다. 비행기는 고도를 계속 낮췄고 이윽고 시내 중심가도 지나게 되었다. 런던 시 자체가 워낙 평탄한 지형에 위치하고 있는데다가 건물들의 고도제한도 이뤄지고 있어서, 상공에서도 타워브리지나 런던 아이등 대충 지형이 보였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어서 사진을 찍으려다가 궂은 날씨라 그냥 마음에 담기로 했다. 이윽고 비행기는 바퀴를 내리고 고도를 더욱 낮추며 막 활주로에 바퀴를 대다...
....가 급가속을 하며 떠올랐다.
착륙 직전의 기장이 뭔가에 놀라서 확 상승해버린 것이 절절하게 느껴질 정도의 비행이었는데, 이후 안내 방송에 따르면 활주로에 장애물이 있어서 착륙하지 않고 다시 활주로가 정리되기를 기다린다고 하는 것 같았다. 다소 위험한 순간을 넘긴 것이기도 했고, 또 한 바퀴 빙 돌면서 항로를 다시 잡고 착륙하는데 10분이 더 걸렸음에도, 우리는 그저 런던의 야경을 한 번 더 볼 수 있음에 즐거워했다.
히드로 공항은 영화 '러브 액추얼리'에도 나왔던 곳이지만, 한국 시간으로는 이미 새벽인지라 몸은 피곤하면서도, 마음은 숙소를 잘 찾아가야 한다라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어서, 공항을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히드로 공항이 역사가 깊은 만큼 시설이 좀 낡았고 수속이 오래 걸린다는 얘기가 있어서 긴장했는데 다행히 거의 지체없이 나올 수 있었다.

휴대폰으로 민박집에 착륙했다고 연락 한 번 하고, 숙소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친 몸에 엄청 큰 슈트케이스까지 끌고 역에 도착, 표를 끊었다. 런던도 교통카드(오이스터 카드)를 쓰고 있고, 그 외에 1일권 등 여러 할인 혜택이 있었는데, 그냥 숙소만 가기 위해서 1회 편도권을 뽑았더니, 한 장에 4파운드. 전철 한 번에 거의 8000원이라니..... 런던의 물가에 좌절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대중교통이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쌌던 것이다. 위키피디아에 인용된 가디언지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가격이라고 한다.)
런던의 지하철은 작았다. 세계 최초로 지하철이 생긴 곳이라 선로는 단선이고 그나마도 좁다라는 말은 들었지만, 예상보다도 작았다. 슈트케이스를 끌고 손에는 가이드북을 든 '나 관광객이오.'라고 써붙이고 있는 사람들은 피곤하거나 약간 긴장한 모습들이었는데, 이후 시내에서 타는 런던 시민들에게서는 연말이라 그런지 사람들 사이에서 가벼운 흥분이 느껴졌다. 평소에는 안 그럴 것 같은데 발그레한 얼굴로 맥주병을 손에 들고 타는 젊은이들도 있었고. 파티라도 가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련되게 빼입고 가는 청년들도 있었다(모자, 옷, 머플러, 신발에 이르기까지 전부 다 정말 멋졌는데...). 적당히 취했는지 서로 더듬어대는 *-_-* 커플도 있었고, 역에서는 십대 몇 명들이 몰려다니면서 "Hey- yo- Happy *ucking new year~"라며 놀아대는 그 모습에, 역시 사람 사는 데는 어딜 가나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 시간으로 밤 10시 정도에 숙소가 위치한 캐나다 워터 역에 도착했다. 며칠 전부터 쌓인 피로와 긴장에다가, 장시간 비행으로 인한 피로, 거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런던의 밤을 계속 경계하다보니, 민박집 주인이 마중 나올 쯤에는 머리가 핑핑 돌면서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역에서 5분쯤 떨어져있는 민박집으로 가면서 주인이 이런 저런 말을 붙였음에도 대꾸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방으로 안내받자마자 말 그대로 졸도하듯 쓰러져버렸다. 힘이 남아돈다면야 시내에 가서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었겠지만, 우리는 이미 한계를 넘은 상황이었다.
그러고보니 새해 카운트 다운, 혹은 제야의 종을 안 본 것은 수년 만에 처음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뭐 어떠랴. 2006년 1월 1일 제야의 종소리에 맞춰 '다음번 제야의 종은 친구가 아닌 부부로 맞이하자.'라고 했던 약속은 이미 지켰단 말이지. :)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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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 신혼여행기네. :)
영국 뿐만 아니라 유럽의 지하철을 타다가 서울 지하철 타면 어찌나 넓고 쾌적하고 깨끗한지 몰라. :)-
런던은 좁긴 했지만, 그래도 굉장히 깔끔했었는데. 파리는..... -_-
서울이 공기가 좀 안 좋고 사람이 '너무' 많긴 하지만, 시설의 유지, 보수 및 청결 수준은 세계적이 아닌가 싶어.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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