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Goodbye, Vlade

Posted 2007/03/03 15:21, Filed under: NBA
2004년 7월 25일에 썼던 글입니다. NBA매니아 사이트에도 올렸었고요. 계정 이사해놓고 안 옮겼던 기억이 나서 블로그로 옮겨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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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떠났다. 지난 98-99시즌부터 새크라멘토 킹스와 계약을 맺은 이래, 6년 동안 킹스의 주전센터로 뛰어온 블라디 디바치(Vlade Divac). 그가 결국 새크라멘토를 떠나 L.A. 레이커스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89-90시즌부터 7년을 레이커스에서 뛰기도 했던 그이기에, 사실 '예전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팬으로서 씁쓸한 마음은 감출 수 없다. 디바치를 사실상 '팽'해버린 구단에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고, 디바치가 비록 적은 연봉이라도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새크라멘토에서 선수생활을 마쳤다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다음 시즌부터는 보라색 옷을 입은 마음씨좋은 털보 아저씨의 웃음을 더이상 볼 수 없다. 이 글은 지난 몇 년간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그에게 바치는 글이다.

"크리스 웨버 수비 리바운드! 공은 제이슨 윌리엄스에게! 제이슨, 바운드 패스! 아, 블라디! 덩크로 마무리 짓습니다!"

99년 말이던가, NBA에 슬쩍 관심을 가져볼까라고 생각하며 웹을 뒤적거리고 있다가 경기 하이라이트를 하나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새크라멘토 킹스의 팬이 되었다. 수비리바운드를 따내는 순간 팀 전부가 상대편 골대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수비리바운드는 중앙선 부근의 포인트가드에게 연결되었고, 그 포인트가드는 두 번의 드리블 후 골대 쪽으로 힘있게 바운드 패스를 찔러넣었다. 카메라가 미처 따라가지 못했지만 골대 앞에는 센터가 뛰고 있었고, 그는 그 공을 받아 덩크로 속공을 마무리 지었다. 수비 리바운드로부터 속공으로 2점을 따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3초! 단순히 '빠르다'라는 수식어는 그들에게 모욕이 될 것만 같았다. 그 무지막지한 초특급 런앤건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블라디 디바치가 처음으로 내 눈에 들어오게 된 것도 그 때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 농구에서 센터는 '느린' 사람이었다. 수비나 좀 하고, 속공은 가드들에게 맡기고, 지공이 될 경우에나 어슬렁 어슬렁 들어가 공을 넣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 내게 속공을 할 때 팀원들과 같이 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먼저 뛰어들어가 포인트가드의 패스를 받아 속공을 마무리짓는 센터는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농구를 보는 눈이 지금보다 훨씬 좁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센터가 팀전술인 속공에 맞춰 그렇게 열심히 뛰며 마무리까지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어, 저 털보 아저씨. 예전엔 노란 유니폼(L.A. 레이커스)을 입고 있었던 거 같은데, 이 팀으로 옮겼나보네? 열심히 뛰네.'라는 정도가 디바치에 대한 첫 인상이었을까? NBA에 대해서 아는 것도 그다지 없고, 이제 막 새롭게 유심히 지켜보려고 하던, 그리고 당시로서는 센세이션에 가까웠던 제이슨 윌리엄스의 쇼타임에 홀딱 반해버린 내게 있어서 블라디 디바치는 '키 좀 크지만, 운동능력이 그다지 좋은 것 같지는 않은, 그럼에도 팀 전술을 잘 이해하며, 리그에서 흔치 않은 백인 센터.' 정도였을 뿐이었다.

조금 더 킹스 팀에 관심을 쏟고, 인터넷의 발달로 통계치뿐만 아니라 경기 모습도 보게 되면서, 내 첫인상은 그에 대한 모욕이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비록 내가 볼 때는 이미 그의 신체적 전성기는 지나고 있었기에 운동능력도 시원찮고, 슛거리도 짧아지고 있었지만. 그는 영리했으며, 능글맞을정도로 노련했으며, 팀 전술을 잘 이해하는 게 아니라, 팀 전술의 기본 포석이었다.

'패스하는 빅맨'에서 '포인트 센터(point center)'로의 진화

'훌륭한 슈팅가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충분조건이지만, 훌륭한 센터는 강팀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농구에 있어 '센터'라는 포지션은 더없이 중요하다. 공격시 상대 팀의 골밑을 유린해야 하며, 수비시에는 상대 팀의 공격에 맞서 골밑을 지켜야 하는 그런 존재이다. 90년대 시카고 왕조를 제외한다면, 대대로 리그의 강팀에는 대표할만한 센터가 있었다. '고릴라 덩크' 혹은 '파리채 블러킹'으로 유명한 패트릭 유잉이나, '드림 무브'로 우승반지를 가져온 하킴 올라주원, 영리한 움직임으로 또다른 센터의 모습을 보여준 데이비드 로빈슨, 그리고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리그 전체를 쥐고 흔든 샤킬 오닐에 이르기까지 강팀에는 좋은 센터들이 있었다. 아니, 좋은 센터들이 강팀을 만들어왔다.

블라디 디바치를 이들의 능력으로 비교하자면 다소 부족해보이는 인상이 있다. 2m 16cm의 118kg의 몸집은 훌륭했지만, 그는 상대를 '압도'하는 타입은 분명 아니었다. 림을 부술 듯한 폭발적인 힘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파울하지 않으면 막을 수 없을만한 강력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부드러운 스핀 무브를 통해 골밑 득점을 만들어갔고, 비록 해가 갈수록 짧아지긴 했지만 센터치고는 여전히 긴 중거리슛을 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디바치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그의 '패스'였다.

'패스할 줄 아는 빅맨'은 상대 팀에게 그야말로 곤욕이다. 디바치를 상대하는 수비수는 항상 두 가지를 생각해야 했다. '지금 이 사람은 나를 스핀무브로 제끼고 슛을 쏠 수 있지만, 동시에 오픈된 팀원에게 패스를 찔러줄 수도 있다. 우리 팀이 이기려면 이 둘을 다 막아야 한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가드가 공을 운반해오고, 이윽고 하이포스트에 서 있는 블라디 디바치에게 공이 투입된다. 블라디는 위의 사진에서처럼 수비수(대부분 자신보다 키가 작은)를 등지고 팀원들의 움직임을 살펴본다. 킹스 팀원들은 스크린을 써서든 개인돌파로 뚫든 어쨌든 자신의 수비를 뚫고 골밑으로 파고든다. 혹은 골밑에 수비가 몰린 틈을 타서 3점슛 라인에서 공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여지없이 블라디는 그들에게 정확한, 사보니스의 그것처럼 팬시하지는 않지만 10배쯤 더 정확한, 패스를 연결해준다. 그리고 오픈찬스에서 공을 잡은 팀원은 간단하게 득점에 성공한다.

말은 쉽지만 '패스에 능한 빅맨'은 생각만큼 흔치 않다. 먼저 자기팀과 상대팀의 움직임을 궤뚫는 코트비전이 있어야 하고, 적절한 볼핸드링 또한 필요하다. 게다가 상대편 수비수를 하이포스트로 끌어내려면 빅맨 자신의 공격력, 특히 중거리슛도 필수이고, 상대팀의 수비가 타이트할 경우 빅맨 자신이 팀원들에게 스크린을 걸어줘서 오픈찬스를 만들어내야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블라디 디바치는 이 모든 조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그야말로 '패싱 빅맨'의 모범이라 부를만한 선수인 것이다.

이런 '패싱 빅맨'은 팀 전술의 포석이 된다. 98-99시즌 크리스 웨버와 블라디 디바치의 영입으로 새로운 팀으로 시작했던 새크라멘토 킹스는 이런 '패싱 빅맨'을 기본으로 두는 전술을 개발해나간다. 디바치가 하이포스트에서 서있다가 쇄도해들어가는 웨버에게 앨리웁을 띄워준다거나, 스크린으로 수비수를 제치고 3점슛라인에 달려간 페쟈에게 디바치가 킥아웃 패스를 해줘 와이드 오픈 3점슛을 만들어내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오기 시작했다. 더그 크리스티, 마이크 비비, 브래드 밀러 등 패싱 센스가 넘치는 선수들이 킹스에 합류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03-04시즌에 이르러 팀원들간에 끊임없는 볼 이동으로 오픈찬스를 만들어내는 '모션 오펜스'를 완성해낸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바로 '포인트 센터' 블라디 디바치가 있었다.

그렇다. 모션 오펜스를 통해 그는 그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냈고, 그는 더이상 '패스하는 빅맨'이 아니라 팀의 공격을 시작하는 '포인트 센터'였던 것이다. 하이포스트에서 공을 잡고 골 밑으로 쇄도해들어가는 가드진들에게 패스, 백도어 플레이를 이끌어냈고, 혹은 바깥으로 킥아웃 더그 크리스티, 페쟈 스토야코비치, 마이크 비비, 앤쏘니 필러, 바비 잭슨 등의 3점슛을 만들어냈다.

선수생활 통산 3.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 중인 그는 03-04시즌에 게임당 9.9득점, 5.7리바운드, 5.3어시스트(!)라는, 이름을 가리고 통계치만 봐서는 센터라고 부를 수 없을만한, 어마어마한 수치를 만들어냈다. 정규시즌 기록만으로 따지면 게임당 어시스트 리그 20위. 리그에는 29개의 팀이 있으니, 그는 웬만한 팀의 포인트 가드 이상의 어시스트를 기록해낸 셈이다. 그리고 03-04시즌, 센터로서는 드물게 트리플 더블(개인 통산 여덞번째)을 기록했으며, 어시스트, 리바운드 등이 하나씩 모자라는 준 트리플 더블급 활약을 연이어 갔다.

비록 시즌 후반과 플레이오프에서는 팀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흔들리면서 & 체력 고갈로 정규시즌만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03-04시즌의 블라디 디바치는 센터라는 포지션의 개념을 수정해야 할 만한 그런 모습이었고, '패싱 팀'이라는 새크라멘토 킹스라는 팀 색깔을 만들어낸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라커룸 리더. 나이들었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블라디 디바치는 또다른 면에서 팀 색깔을 만들어냈다.

NBA에는 수십 개의 팀이 있고, 그 팀마다 정규 로스터 12인이 있다. 그들 모두 NBA선수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각기 개성이 넘친다. 최근 들어 국적도 다양해진 NBA에서 '인화(人和)'는 또다른 중요한 부분이다. 팀원간의 불화는 팀플레이의 붕괴로 이어진다. 특히 킹스 팀처럼 팀원들간의 유기적인 패싱을 주된 팀 칼라로 갖고 있는 경우, 팀플레이의 붕괴는 가히 치명적일 것이다. 하지만 킹스 팀의 팀 내 분위기는 어떤 NBA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좋다. 고액연봉임에도 제 값을 못하고 있는 크리스 웨버가 있고, 자신의 능력보다도 훨씬 더 헐값에 뛰고 있는 선수들이 있고, 국적도 다양한 편이라 여느 팀 못지 않게 불안요소가 있음에도, 분위기는 꽤 좋은 편이다. 어쩌면 팀원들간의 굳은 신뢰와 화합이 있었기에 '모션 오펜스'라는 유기적인 팀전술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좋은 팀 분위기 뒤에는 라커룸 리더, 블라디 디바치가 있었다.

98-99 시즌, 블라디 디바치가 샬럿을 떠나 새크라멘토로 왔을 때, 모든 리빌딩 중인 팀이 그렇듯 팀은 어수선했다. 에이스라고 할 크리스 웨버는 골든스테이트와 워싱턴에서 뛰다가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채 '팔려왔고', 지방소도시 새크라멘토는 그에게 있어 '유배지'나 다름없어 보인 곳이었다. 그는 새크라멘토에서 의욕상실로 좌절할 수도 있었다. 적어도 이후 자신의 전성기를 뽐내며 수천만불의 재계약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블라디 디바치가 아니었다면... 페쟈 스토야코비치는 96년 새크라멘토에 드래프트 되었으나, 이후 수년을 그리스 리그에서 보내야 했다. 그리스 리그에서 MVP를 수상했고, 98년 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서 디바치와 유고슬라비아 대표로 뛰었으며, 이후 정식으로 새크라멘토에 들어오게 되었으나, 아직 NBA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 리그 최고의 슈터이며, 리그 MVP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으며 최전성기이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외국인 선수들처럼 언어장벽이나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리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갔을 지도 모른다. 블라디 디바치가 아니었다면...

다소 과장한 면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역사에 '만약'을 가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지만. 98-99시즌, 블라디가 킹스로 오지 않았다면 킹스가 지금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나이가 많다고 해서 없던 덕이 거저 생기지는 않는다. 가만히 앉아서 나이를 먹는다고, 누구나 라커룸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선수 생활 막판까지 감독이나 다른 선수들과 언쟁을 하고 팀내 주도권을 두고 다투다가 손가락질 받으며 사라진 선수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들에게 비춰볼 때, 디바치는 진정한 라커룸 리더였다. 위위 사진의 페쟈처럼 위닝샷을 성공시키고 나서 누군가에게 덥썩 안기고 싶을 때, 바로 위 사진의 바비 잭슨처럼 부상으로 인해 유니폼도 입지 못한 채 벤치에서 시합을 지켜보고 있을 때. 그들을 안아주고, 그들을 칭찬해주고, 그들을 보듬어준 것은 '큰형님' 디바치였다. 매년 여름 지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농구 캠프를 열고, NBA의 "Read to Acheive'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 디바치는 정말 '아름다운 노장'이었다.

03-04 시즌, 계약 만료, 그리고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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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해도 '노장'은 '노장'이며, 세월은 그에게 능글맞을 정도의 노련함과 원숙함을 주었지만 그의 몸을 빼앗아갔다. 98-99시즌 킹스로 와서 그는 게임 당 평균 14.3 득점을 올렸지만, 03-04 시즌에는 9.9득점에 그쳤다. 물론 그동안 킹스 팀에 득점에 능한 선수들이 많이 늘었기에 디바치가 굳이 많이 득점할 필요는 없었지만, 수치로 나타나는 것 외에도 그의 공격력, 특히 그의 슛거리는 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더 큰 문제는 리바운드. 경기스타일을 포인트 센터에 가깝게 바꾸었기에, 즉 하이포스트에서 안으로 패스를 찔러주는 경우가 많기에, 어시스트가 늘고 리바운드가 줄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의 리바운드는 매년 약해지고 있었다. 치열한 NBA의 골밑에서 68년생의 털보 아저씨는 자리 잡기도 버거워지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었다. 03-04시즌에는 브래드 밀러의 영입으로 출장시간이 조금 줄어들었기에 수치상의 하락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블라디 디바치는 03-04시즌 게임 당 5.7 리바운드를 걷어내는데 그쳤다. 물론 그의 팀 기여도를 수치로만 평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그는 계속해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한팀의 주전 센터를 맡기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포인트 센터로 거듭나면서 02-03시즌에 비해서는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안 그래도 '몸값비싼 유리발목-크리스 웨버'를 데리고 있는 킹스 구단측으로서는 좀 더 터프한 센터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03-04시즌으로 6년의 계약이 끝났다. 1-2년 정도는 더 뛸 수 있다고 판단한 디바치는 새크라멘토 킹스와의 재계약을 원했다. 부인과 함께 시내에 식당과 뷰티숍까지 개업한 디바치는 새크라멘토에 그야말로 애정을 갖고 있었다. 대부분의 팬들도 재계약을 원했고,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은 디바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협상 테이블에 앉은 구단 측은 '곤란하다'라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었다. '어차피 이제 디바치를 주전으로 쓰기는 무리이다. 디바치 이후를 대비하여 비슷한 스타일의 패싱 빅맨, 블라디 디바치의 젊은 버전이라고도 불리는 브래드 밀러를 영입해왔지 않느냐. 브래드 밀러를 주전으로 놓고 비슷한 스타일의 디바치를 백업으로 두는 것은 불필요하다. 킹스의 인사이드는 좀 더 터프해질 필요가 있다.'라는 것이 구단 측의 상황 판단이었을 듯 하다.

"구단 측이 '비지니스'의 관점에서만 생각하고 있으므로,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라며 블라디는 떠났다. 2004년 7월 19일, 블라디 디바치는 샤킬 오닐의 마이애미행으로 인해 센터가 절실히 필요했던, 그리고 그 자신이 NBA 선수 생활을 시작했던 곳이자, 7년을 뛰었던 L.A. 레이커스와 2년 계약을 맺었다. 그가 지난 6년간 땀을 흘렸던 아코 아레나에서 팬들의 성원을 받으며 은퇴식을 성대하게 치뤘으면 좋으련만, 그는 다른 곳에서 자신의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비록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블라디 디바치가 L.A.와 먼저 계약을 하고, 그 빈 곳을 유타의 오스터택을 데려와 메꾸는 식으로 진행되긴 했지만, 그렇게 과하지도 않았던 (물론 웨버의 연봉 덕분에 구단의 자금 사정이 빠듯하긴 했다지만) 디바치의 요구를 뒤로 한채, 디바치에겐 '우리가 낼 수 있는 돈은 1년 250만불이다.'라고 해놓고서 이후 오스터택과 450만불의 계약을 맺은 걸 보면, 사실상 디바치는 '팽'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이뤄지는 '비지니스의 세계'라지만, 6년간 팀에 큰 공헌을 해온 선수와 이런 식으로 끝맺음하는 것은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태평양 건너편의 팬 하나가 좋게 보든, 좋게 보지 않든 간에 모든 상황은 종결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팀 새크라멘토 킹스의 주전 센터. 팀 전술의 기본 포석이자, 팀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그가 떠났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더니... 킹스 팀 공식 웹페이지의 로스터에서 그의 이름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니, 이제 킹스 팀의 팁오프를 블라디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한다니, 벤치에서 입 주위에 손을 모아 독려하는 그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니, 가끔 보여주던 그 사람 좋은 웃음을 더 볼 수 없다니.. 입에 쓴 맛이 살짝 돈다.

나는 여전히 보라색 유니폼의 이 팀을 응원할테고, 당신은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의 팬이기도 할 것입니다. 블라디 디바치, 지난 6년간 정말 고마웠습니다. Thank you and farewell, Vlade.

블라디 디바치 @ 새크라멘토 킹스 : 그 6년의 짧은 기록들

끝으로, 새크라멘토 지역신문 SacBee에서 'Goodbye, Vlade'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디바치와의 6년을 간략하게 정리해둔 것이 있어서 간단하게 번역해서 옮겨 붙여본다.

98-99시즌
01.22 : 블라디 디바치, 자유계약선수로서 킹스와 6년에 6250만 불에 계약, 이에 "아주 행복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히다. 그는 이전에 L.A. 레이커스에서 7년을, 샬럿 호네츠에서 2년을 뛰었다.
02.05 : 계약 후 대 샌안토니오 전에서 킹스로서 최초 데뷔. 이 날 디바치는 야투 9개 중 2개를 성공시켜 4득점하였으며, 팀은 101-83으로 패배하였다.
05.12: 서부 플레이오프, 유타재즈와의 경기에서, 디바치는 위닝샷을 포함, 마지막 4점을 득점했다. 이날 승리로 킹스는 2-1로 시리즈를 앞서나갔다.
05.16 : 시리즈 2-2로 동률인 가운데, 마지막 5차전 동점상황에서 디바치는 시합시간 종료와 함께 훅샷을 던지나 들어가지 않았다. 킹스는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으나 희망의 조짐이 보였다.
05.19 : 디바치는 NATO에 그것이 발칸 지역의 상황을 더 불안하게 만들 뿐이라며, 자신의 고국인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공중 폭격을 멈춰달라고 탄원하였다. "나는 정치가는 아닙니다; 해법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폭격은 단연코 해법이 아닙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99-00시즌
04.30 : 디바치는 미국과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양국의 빈곤층 어린이들에 대한 자선행위로, 프로농구기자협회가 매년 수여하는 'J. Walter Kennedy Citizenship'상을 받았다. 이는 킹스 선수로서는 최초의 수상이었다.
10.11 : 추방당한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의 보좌관이 맡고 있던, 파르티잔-벨그레이드(Partizan- Belgrade) 농구 클럽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디바치는 밀로세비치에 반대하여,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았었다.

00-01시즌
01.02 : 피닉스 선스에게 121-117로 연장 승리를 거둔 날, 자신의 통산 최고 득점 34점을 기록하였다.
02.07 : 샤킬 오닐의 대타로서, 디바치로서는 최초로 NBA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01-02시즌
02.06 : 보스턴 셀틱스 전에서 승리하면서, 15득점, 14리바운드, 10어시스트를 기록, 개인 통산 일곱번째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다.
12.08 : 스퍼스 전에서 승리하며 개인통산 12,000득점을 기록.
05.26 : 레이커스와의 서부 지구 결승 4차전. 디바치는 마지막 순간에 리바운드를 쳐냈으나, 이는 로버트 호리의 손에 흘러들어갔고, 이 호리의 3점슛으로 인해 킹스는 패배, 전체 시리즈가 2-2 동점이 되어버렸다. 그 바로 직전 킹스 공격 차례일 때 디바치는 자유투 두 개를 얻었으나 그 중 한 개를 놓쳤었다. 그 자유투를 넣었더라면 킹스가 점수차를 3점으로 벌릴 수 있었을 것이다.
09.08 : 인디애나 폴리스에서 열린 IBF 세계 농구 선수권대회에서 디바치와 팀동료 페쟈 스토야코비치는 유고슬라비아가 아르헨티나를 84대 77로 꺾고 우승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

02-03시즌
02.03 : 디바치와 그의 부인은 '올드 새크라멘토'에 'Tunel 21'이라는 트렌디 레스토랑을 차렸다.
11.28 : 디바치와 그의 부인은"L'Image"라는 두번째 식당을 개업했다, 식당옆에는 ' L'Image Beauty Boutique'라는 뷰티샵도 차렸다.

03-04시즌
05.19 : 서부 지구 준결승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의 7차전에서 21분을 뛰며 7득점을 기록했다. 팀은 83-80으로 패배했으며, 이는 디바치가 킹스에서 뛴 마지막 게임이 되었다.
07.19 : 디바치의 요구연봉을 킹스 구단이 받아들이지 않자, 디바치는 1989년 자신을 드래프트했던 레이커스에게 전화를 해 "해봅시다."라고 말했다. 2년에 490만 미드 레벨 익셉션으로 계약맺을 듯 하다.


2007/03/03 15:21 2007/03/0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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