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에서 살고 싶으세요?

Posted 2008/04/03 01:16, Filed under: 상상
‘어떤 집에서 살고 싶으세요?’

이번 주 씨네 21에 실린 글인데 살짝 여운이 남네요.

잠시 다른 얘기지만 ‘이탈리안 잡’(리메이크판)이라는 영화에 보면 사상 최악의 악당이 나옵니다. 동료들끼리 한 건 하고, 바로 그 동료들을 배신하는 악당인데, 무자비하고 잔인해서 사상 최악이라는 게 아니라 ‘꿈이 없다’라는 점에서 최악인 악당입니다.

예를 들어 극 초반에 도둑 동료들끼리 이번 건을 성공하고 나면 뭘 하고 싶냐 서로 물어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 다른 사람들은 ‘몇 년 형 XXX 자동차를 사고 여자를 태울 것이다.’, ‘모델명 xxx인 오디오 장치를 갖추고 그 엄청난 출력을 즐길 것이다.’ ‘대저택에 초판본용 서재를 만들고 신발용 방을 만들겠다.’ 등등 다소 웃길 지 모르지만 아주 구체적인 것들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때 이 악당(당시는 아직 동료)에게 ‘너는?’하고 물어보자 이 악당은 아직 못 정했다며 ‘글쎄, 자네들 거 하나씩 다 살까.’라는 식으로 얘길 합니다. 동료를 배신하고 엄청난 재산을 손에 넣게 된 악당. 예전에 배신당한 동료들은 이 악당의 집을 다시 털어 복수하고자 뭉쳐서 이 악당의 집을 염탐하기 시작합니다.

아, 그런데 그 악당의 대저택에는 정말로 그 자동차와 그 오디오 장치가 있었던 겁니다. 참 허무하죠. 돈을 엄청나게 훔쳐냈는데도 정작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소망을 그저 따라 하고만 있었던 겁니다. 돈을 벌었지만 그걸로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그런 참 최악의 악당이었던 것이죠.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악당을 참 비웃었습니다만, 위 글을 읽고 보니 그런 상상력 부재는 비단 영화에만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돈을 많이 벌어, 나만의 집을 짓겠다.’ 어찌 보면 굉장히 원대하고 이루기 힘든 꿈인데, 정작 그 기회가 왔을 때에 우리가 건축가에게 얘기할 수 있는 게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나 잡지나 인터넷 등에서 유행하고 있는 ‘겉모습’뿐이라면 참 씁쓸하네요.

그래서 말인데…

살고 싶은 집 (짓고 싶은 집)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물론 그대로 집을 짓기는 쉽지 않을 거에요. 제일 크게 돈도 문제가 될 것이고, 출퇴근, 교육여건, 문화 시설 등등을 생각하면 “실제로 살고 싶어하는 곳에 살고 싶은 집을 짓기”란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뭐 어때요. 꿈인데. 그러라고 꾸는 꿈인데 말예요. 혹시 아나요. 열심히 살다 보면 그런 기회가 올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로또라던가..??) 혹시나 꿈이 이뤄질 수 있는 그 때 다른 사람들이 멋지게 해놓은 카탈로그 꾸러미를 뒤적이기 전에 자기가 차곡 차곡 적어왔던 노트라도 내밀 수 있다면 좀 더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요?

사실 이런 얘기는 예전에도 한 번 읽은 적이 있어요. 김한길 씨 수필집이었나, 마찬가지로 집을 지으려고 했는데, 막상 건축가 친구 앞에 서니 말이 잘 안 나왔대요. 건축가 친구가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생각날 때마다 집에 대한 아이디어를 적어보라고 해서 그 때부터 김한길 씨도 꾸준히 적었답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햇빛이 허리 부분까지 왔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이요. 물론 나중에 그 노트를 갖고 간 친구가 맘에 쏙 드는 집을 지어준 것은 물론이고 말이죠.

각자 자기 삶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찾으면서 그에 맞는 공간을 정리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제가 살고 싶은 집은 하루 이틀 뒤에 적어보렵니다~


2008/04/03 01:16 2008/04/03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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