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도보 세계 여행, 특히 오지여행으로 유명해진 한비야 씨가 국제 NGO 월드 비전에 참여해서 수년 동안 열정을 다해 긴급 구호 활동을 해오며 겪은 얘기들을 다루고 있다.
당연히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긴급 구호가 필요한 세계 각지의 현실이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곳곳에서 기아, 빈곤, 전쟁, 질병, 폭력, 자연재해 등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에 대한 불만 때문에 ‘이민을 가겠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분명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먹을 것이 없어 독초라도 캐먹어야 하거나, 씨앗 살 돈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거나, 계속된 폭격으로 식수가 끊겼다거나, 에이즈에 감염될 걸 알면서도 몇 푼의 돈 때문에 매춘을 해야 한다거나, 내전 때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포로를 잡아/포로가 되어 손목을 자르거나/손목이 잘리거나 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얘기이다.
이런 다른 세상에서 한비야 씨와 월드 비전은 긴급 구호 활동을 한다. 각각의 상황에 맞춰 다양하게 대응하는 긴급 구호 활동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는데,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그네들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방식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물론 한비야 씨가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 이런 긴급 구호 활동은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한비야 씨의 비유를 따르자면, 건물 복도에 수도를 틀어놔서 복도에 물이 흥건한데 긴급 구호 활동으로 급한 대로 물을 닦아내도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는 한 아무리 닦아내도 복도는 또다시 물바다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활동이 평가절하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들이 활동하지 않았다면 복도의 물을 조금이나마 닦기는커녕, 복도에 물이 흥건하다라는 사실조차 알기 힘들었을 테니까.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사람’의 역할이다. 월드 비전은 굉장히 큰 단체이고, 구호 활동에 있어서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운영 원칙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합리적인 조직이라도 결국 직접 현장에서 일의 성패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매뉴얼보다는 사람이라는 것을 책을 읽으며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다. 사소해 보이지만, 상대방의 언어, 인사, 관습을 존중하다 보면 그만큼 서로 이해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일이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노련한 여행가인 한비야 씨는 그만큼 인간 관계에도 노련했는데, 결국 살아온 세월이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을 만들어 가는 세월.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나로서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한비야 씨의 신앙에 대한 얘기도 참 좋았다. 지난 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무리한 선교 활동으로 피랍되었던 이들과 한비야 씨가 정말로 같은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신의 일을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힘든 일이 있을 땐 버팀목으로 삼고, 틈날 때마다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믿음이 부러웠달까.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좋은 책이다. 새삼스럽지만 세계는 참 넓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말고도 ‘다른 세상’이 많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좀 더 보는 눈을 넓힐 필요가 있다. 단순히 대한민국이라는 국경, 즉 지도의 경계에 생각을 가두지 말고, 더 큰 세상에서 소명을 찾는 것. 그것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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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ralab.net/tt22008-05-04T17:11:38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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