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런던 자연사 박물관, 그 깊은 내공

Posted 2008/07/25 00:13, Filed under: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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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초에 다녀왔고, 여행기는 2007년 1월 말에 쓴 게 마지막이었으니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좀 쑥스럽긴 하지만, 계속 이어서 써보자. 예전 편들을 보려면 페이지 하단의 태그 유럽여행을 클릭.)

지난 번 글: 5. 차분하고 깔끔했던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을 나선 우리는 자연사 박물관 쪽으로 향했다. 내가 고생물학을 공부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 대한 얘기가 워낙 좋아서 기대가 꽤 컸다. 런던 대부분의 박물관이 그렇듯 이 곳 자연사 박물관도 무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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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여타 박물관처럼 고풍스러움이 느껴졌지만, 뭐라 그러더라 보통 가고일이나 다른 것들이 있어야 할 외벽의 돌기둥 부분에는 익룡, 검치 호랑이 등 사라진 생물들이 익살맞게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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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공룡이 버티고 있는 중앙홀을 지나 왼쪽으로 접어드니 공룡관이었다. 캐나다 타이렐 박물관에서 봤던 것만큼 공룡이 많지는 않았지만(뭐 거기야 세계 3대 공룡 박물관에 속하는 곳이니) 종류 별로 중요하다 싶은 공룡들은 대부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곳이 공룡 화석 소장품의 규모로는 최고가 아닐지 몰라도, 갖고 있는 화석들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정보와 그 방식에 있어서는 압도적인 곳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룡의 이빨, 발톱, 다리뼈 등등 각 부분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을 하나 하나 설명해놓았는데, 재미있으면서도 그 내용이 거의 공룡 개론 수준 정도랄까. 곳곳에 아이들이 직접 뭔가를 만져볼 수 있게 구성해놓은 것도 참 좋아보였다.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이 곳 공룡관은 꼭 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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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대형 포유류 관이었던가 해양 생물관이었던가. 공룡관이나 지구과학관에 비하면 약간 세월이 지난, 어찌보면 약간은 '구식'의 박제가 주르르륵 있는 전시였는데 고래의 압도적인 크기는 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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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나온 화석들을 비롯해 이런 저런 화석 및 박제들을 구경하다가... 지구과학 및 진화관으로 움직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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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동상들이 여럿 있었다. '웬 생뚱맞은 동상들이람?'하다가 가까이 가서 동상들을 제대로 보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순간, 정말 말 그대로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이 입구 앞의 동상들은 지구과학, 화석, 혹은 생명의 진화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가 하는 그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테면 화석화된 암모나이트를 발견한 사람들은 예전에 이런 생물이 살았다가 죽어서 묻힌 뒤 돌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대신, 이것이 '메두사'의 증거였다고 여겼다. 이런 조개같은 것들이 메두사의 돌로 굳히는 힘 때문에 돌이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멸종한 마스토돈의 두개골을 그리스 사람들은 외눈거인 사이클롭스의 머리라고 생각했고 말이다.

이렇게 여섯 개의 동상마다 화석과 과거 시대 사람들의 인식과 현재 알고 있는 사실들을 묶어버리는 데, 정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와 레벨이 달라도 정말 너무 다르달까. 우리나라의 경우 겨우 전시 물품 확보해서 전시하기에도 급급한데 이들은 이미 과거의 자신들과 현재의 자신들마저 이렇게 묶으면서 철학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뭐 이 때부터는 솔직히 말 그대로 항복하고 맘편하게(?) 관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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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지구과학관에서는 지구의 내부구조와 그 힘. 그리고 그게 현재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인 지진(저 전시실에 가면 주기적으로 땅이 흔들리면서 지진을 체험할 수 있다.)을 볼 수 있었고, 퇴적암, 화성암, 변성암의 생성 원리도 공부하면서, 온갖 퇴적 구조들을 실제로 만들어 볼 수 있는 장치들이 있었다. 이 정도 기본을 갖추고 있으니 생명의 진화나 광물 부분에 있어서도 더할 나위 없이 깔끔했고 말이다.

다 보고 나오니, 허탈, 감동, 막막함이 한데 뒤섞였다.

자연사 박물관은 막말로 예전에는 박제나 모아놓던 곳이었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도 고래관을 비롯한 현생 동물 쪽에는 다소 그런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곳의 새롭게 단장한 공룡관이나 지구과학관 등은 단순한 전시관이 아니라 최근 경향에 따라 지구의 역사 및 생명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교육 센터에 가까웠다. 특히 지구 과학관은 꼼꼼이 살펴보면 아마 우리나라 대학교 학부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 아니 그 이상까지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감탄스러웠다. 그런데 이 모든 시설이 공짜. 이 동네 애들은 원한다면 언제라도 이 곳에 와서 계속 확인하고 체험하고 공부할 수 있단 말인가. 어릴 때부터 이런 걸 무료로 접해온 애들에게 내가 과연 상대나 될까 하는 좌절감마저 들었다.

지질학이 처음 발생한 곳에 가까우니만큼 영국의 내공이 대단하리라고는 생각했지만, 그것을 비전공자들이 볼 수 있도록 완벽하게 다듬어서 이토록 깔끔하게 내어주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런 것이 정말 진정한 국력이 아닐까. 대체 이 나라 사람들의 기본 내공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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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나오니 아침의 화창하던 날씨는 어디로 갔는지 비가 장대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누가 런던 아니랄까봐. 우산을 준비 안 해서 결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어린이용 무당벌레 우산을 집어들고 나왔다. 비오는 런던의 밤거리는 참 예뻤다.

버스를 타고 있다가, 버스가 내가 생각한 곳과는 다른 곳에 멈추길래 잠시 후 황급히 일어나 벨을 눌렀더니, 운전기사가 어디서 내리려고 하냐고 해서, '그냥 바로 다음 정거장'이라고 하려다가 'As soon as possible'이라고 대꾸해버렸다. 잔뜩 얼어보였는지 정류장도 아닌데(정확히는 정류장에서 출발한 지 한 5-10초?) 차를 세워주더라. 이후 어찌 저찌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

비가 주룩 주룩 내리고 하루 종일 걷고 해서 꽤 피곤했지만, 우리의 첫 날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끝났다.

(언제 또 이어쓸 지 모르지만) 이 다음날에는 내셔널 갤러리와 뮤지컬 라이온 킹을 봤고, 여행 시작하고 처음으로(단 이틀만에?) 툭닥거렸었다.


2008/07/25 00:13 2008/07/2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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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티티  2008/07/29 00:22 Delete Reply

    런던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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