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입니다. "200일 동안 있었던 이야기"에서 "우리 이렇게 만났어요."로 제목을 바꿔봤습니다. 원래는 만난 얘기는 짧게 하고, 있었던 얘기를 길게 가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이리 저리 이렇게 되었군요. 이 제목 쪽이 훨씬 더 내용에 잘 맞는 거겠죠. 언제쯤 다른 얘기들을 또 풀어낼지는 대충 기약이 없습니다. 쉬어가는 페이지로 진짜 질문들을 받아 해볼까나요 -ㅂ-
본 게시물은 인터뷰의 형식을 빌어 둘의 만남을 짚어보는 지극히도 개인적인 글입니다. 다른 곳에 갖고 가실 분은 당연히 없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본 게시물, 특히 이 4편은 염장강도가 별 다섯 개 만점에 별 넷 정도는 될 것이므로 '나는 이런 글이 싫다'라는 분은 읽지 마세요. 날도 날이니만큼 읽고 난 후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 처음에는 12세 열람금지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요새의 완화된 기준으로는 7세 열람금지 정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글 마지막의 그림은 Jopen 협찬입니다. :D
[
지난 이야기에서 계속 ]
H : 물 마시고 오는데 좀 오래 걸렸습니다.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K : 정확히 2개월 동안 물을 마시고 오셨군요. 한 번 만났고, 이후 온라인에서 이래저래 감정을 키워나가다가 '그날'이 오려는 순간이었죠.
H : 아, 이제 기억나요. 그래서
jopen 종강날에 만나기로 했다 그거였었죠? 음, 그맘때
jopen이 스트레스도 좀 심했고 마음도 좀 답답하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이것 저것 생각을 해봤죠. 간만에 보는 날인데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는게 마음도 좀 트이면서 기분도 좋고 그럴까. 어디로 갈까... 그러다 생각한 게 바다였어요.
오오, 바다. 온갖 로맨스가 넘쳐나는 그 곳 말이더냐.
K : 시작부터 강하십니다?
H : 그.. 그런가요? 그런데 뭐 저도 바다를 가본 지 오래 되었고. 뭐 큰 부담없이 바다 놀러가서 출사 겸 이것 저것 사진이나 찍어봐도 재미있겠다...라는 그런 생각이었죠 뭐.
K : 그래서 어디로 가셨나요?
H : 음, 아는 곳이 별로 없어서요. 당일치기여야 했으니 동해, 남해는 일단 제껴두고. 조치원은 충북이니까... 이러면서 생각했던 게 안면도에요. 꽃지 해수욕장이던가 일몰이 좋단 얘기도 들었고 하니 그렇게 잠시 바람이나 쐬고 오는 것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흔치 않은 얘기다. 한 번 만나긴 했었고 이런 저런 얘기들을 했다고는 하지만, 덥썩 바다가자라고 하기엔 적잖이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는데.
K : 음... 좀 갑작스런 면이 있기는 한데요.
jopen님은 뭐라던가요?
H : 아.. 네.. 사실 좀 너무 성큼 한 발을 내딛는 기분은 들었어요. 그런데 그 땐 뭐 이런 저런 거 재고 그럴만한 정신상태^^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큰 의미 없는 것처럼, 그냥 마음번잡한데 잠시 바람이나 쐬고 오자라는 식으로 말을 던졌었죠. 사실 그때는 몰랐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남자가 덥썩 단 둘이 바다가자고 하니 꽤 부담스러웠을 것 같기도 하더라구요.
K : 네, 아무래도 그렇죠. 딱 두 번째 만나는 날인건데요.
H : 그 때 또 도움이 된 게 홈페이지였지요.
jopen은 그 때 이미 저를 꽤 믿을 만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대요. 정확히는 저보다는 방명록에 들락날락하는 사람들과 저의 관계라고 해야 하나. 사람들하고 저렇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최소한 새우잡이 어선으로 팔려간다 하는 일은 없겠다 싶더래요. 어쨌든 그래서 OK 사인을 받아내긴 했어요. ^^
K : 음~ 그렇군요.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겠지만 먼저 그 날일부터 듣고 싶군요.
H : 아... 그러실래요?
뭐 듣자면 끝없이(?) 들을 수 있겠지만, 조금만 더 얘기하다가는 H씨가 또다시 몇 달동안 물마시러 갈 것 같아서 리듬을 약간 끊더라도 서두르기로 했다.
H : 음, 그러니까 종강에 즈음해서
jopen은 시험과 리포트에 치이고 있었구요.
K : 어, 이왕 하시는 김에 조금 더 뒤로 해주시면...
H : 아, 그럼 현관문을 두드리는 것부터 할까요?
K : 거기에서 조금만 더 앞으로 감아주시면 되겠군요.
H : 아침 정도면 될까요?
K : 네. 그 정도면 좋겠군요.
.............................................................................................
토요일 아침. 평소라면 늦잠을 즐기며 또 하루 땡땡이를 쳤을 날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2주 전에 처음으로 봤던, 지난 며칠동안 내내 붙잡고 얘기했던 그녀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얼른 일어나서 출발해야 한다. 그는 허겁지겁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했다.
토요일 오전. 새벽 몇 시에 잤더라. 간밤은 거의 뜬눈으로 보냈다. 4학년 1학기인데 뭐 이리 할 것들이 많은지. 시험에 과제에 이번 주는 내내 힘들었다. 오늘은 종강날이다. H가 종강날에 맞춰 놀러오겠다던데... 바다를 가자던데. 너무 피곤하다. 바다는 그냥 다음에 가자고 할까? 너무 피곤하다. 그녀는 아직 꿈나라에 있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건 참 오랜만이다. 토요일 오전에 차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은근히 막히기까지 한다. 점심 전에 도착하려고 했는데 이대로면 낭패인걸. 청주 톨게이트에서 전화를 해서 자세한 길을 물어보자. 그는 조금씩 그녀에게 가까이 가고 있었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청주 톨게이트라고 한다. 길을 생각보다 잘 찾아오는 것 같았다. 한 20분쯤 뒤면 오려나. 얼른 준비하고 있어야겠다. 당분간 이 자취방하고도 안녕이니 짐도 싸야겠네. 그녀는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전화로 물어 물어 이제 그녀의 집 앞이다. 지난 며칠 동안 100여km 동안 떨어져있던 그녀. 하지만 이제 이 현관문 하나만 가로놓여 있을 뿐이다. 두려움이 든다. 그녀와 만난 건 단 한 번 뿐인데. 채팅에서 늘 그렇듯 나 혼자 멋대로 그녀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 이미지를 좋아해버린 건 아닐까? 아니다. 걱정하지 말자. 직접 보고 확인해보면 되잖아. 그는 문을 두드렸다.
그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줬다. 빼꼼히 열린 좁은 문 틈 사이로 그의 모습이 보인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저 수줍은 표정은 대체 뭐람.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녀는 문을 더 크게 열어 그를 맞이했다.
졸업앨범 사진 찍느라고 머리를 새로 했다고 하던가. 그녀가 보내준 사진으로 보기는 했지만, 찰랑거리는 머리를 보니 너무 잘 어울렸다. 하아, 그런데 처음 만난 날과는 다르게 왠지 어색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말없이 손가방 몇 개를 옮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 그는 내게서 얼굴을 계속 돌렸다.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는 걸까. 저번에 봤을 때는 낯가림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짐 몇 개를 들더니 저벅저벅 밖으로 걸어나가버린다. 그녀도 엉겁결에 서둘러 문을 잠그고 그를 따라 나섰다. 성큼성큼 멀어져버린 그의 뒷모습을 따라 간다. 등이 참 넓은 사람이다.
짐을 부리고 대충 차에 탔다. 차라는 그의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와서일까,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바보같이 왜 그리 긴장했는지, 오늘은 그녀한테 털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텐데, 처음부터 망했다. 그래도 출발하자. 가다보면 나아지겠지. 옆에 앉은 그녀는 이내 곧 이런 저런 얘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의 차에 탔다. 차타고 온다는 얘기는 안 했었는데..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버스타고 안면도 가려면 너무 힘들 것 같았는데 다행이다. 아, 조치원 떠나는 건 참 오랜만이다. 비록 만난지 얼마 안 되었지만, 짜증나는 수업들 얘기하고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다. 날씨도 괜찮고 6월의 경치도 아름답다. 어, 그런데 저건 꿈돌이?
그녀가 꿈돌이가 보인다고 얘기했다. 아니, 대전시의 상징인 꿈돌이가 왜? 'Welcome to Daejeon!' 크악. 반대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천안 방향으로 갔어야 했는데 이게 웬 난리냐. 애써 태연한 척 느긋하게 유턴을 했다. 이때만 해도 앞으로 유턴을 그렇게 많이 할 줄은 몰랐었다. 핸들을 잡은 그의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푸핫. 그는 20여분 정도나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꿈돌이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대전 시내까지 들어갈 뻔 했다. 다시 차를 돌려 오던 길을 되짚어갔다. 앞에서 대형트럭과 승합차가 추돌하는 사고를 봤다. 사람이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오늘 괜찮은걸까?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창밖의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앞 쪽에서 사고까지 났다. 이거 영 수상하다. 지도에서 길을 대충 보고 오긴 했지만, 초행길이라 낯설다. 북쪽을 향해 달리다가 서쪽을 향해 달리면 되는 것일텐데. '2만 km달린 숙련된 운전수'라고 자랑했던 게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낯선(?) 그녀와 같이 달리는 것만으로도 그는 여전히 즐거웠다.
그는 벌써 두 번째 유턴을 했다. 지도책을 본 게 벌써 네 번째. 버스보다 덜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피곤하긴 한데... 하지만 이렇게 바로 옆에서 그와 얘기할 수 있으니 좋았다. 메신저도 아니고 전화도 아닌 목소리로 바로 옆에서 얘기한다라는 것이 좋았다. 차 안에서 오래 있는 것도 나름 버틸만하다...라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녀가 지루해하기 시작했다. 하긴 세 시간째 차를 타고 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어찌어찌 얘기하다가 그녀보고 때려보라고 했는데, 그녀의 주먹이 그의 어깨에 꽂혔다. 체구도 작고 해서 별로 안 아프겠지 했는데 은근히 손이 매웠다. 하지만 이래저래 살짝 살짝 스치는 그녀의 손이 마냥 좋았던 그였다.
너무 세게 때렸나? 그렇게 세게 친 것 같지 않은데 그가 생각보다 아파했다. 장난이었는데... 잠시 식당에 들러 밥을 먹었다. 김치전을 살짝 먹었다. 그는 국밥을 훌훌 비워버렸다. 먹기도 잘 먹지. 거의 다 온 것 같다라고 그가 말했다.
길을 잘못 선택했던 것일까. 안면도는 생각보다 굉장히 멀었다. 그녀가 지루해하는 것 같아서 거의 다 왔다고 여러 번 얘기했지만, 아직 한참을 더 달려야 하는 것 같다. 이대로면 오늘은 차만 타다가 시간 다 보내게 생겼다. 초조해하는 그의 눈에 바다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와, 바다다. 어릴 때 한 번 보고 십여년 만에 처음으로 본 바다이다. 방파제 양쪽에 펼쳐진 푸른 바다에 눈이 시원해진다. 너무 오래 차타고 있어서 몸이 뻐근할 지경이었지만, 간만에 본 바다에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녀의 옆에는 그도 있었다.
너댓시간 동안 달린 덕에, 일단 어딘가에 내리고 싶었던 그는 '안면도 해수욕장'이라는 팻말을 따라 들어갔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6월의 햇볕이 조금 따갑긴 했지만, 이 정도면 산책삼아 살살 걸어봐도 좋을 것 같다.
모처럼 바다까지 왔는데 바닷물에 발을 담궈보고 싶었다. 그와 함께 신발이며 양말을 살짝 벗어두고서 모래밭에 발을 내딛어봤다. 썰물 때인지 갯벌같이 조금 질퍽질퍽하기도 했지만 발이 편안했다. 바닷가라서 바람도 산들산들 불고 햇볕은 따스했다. 어, 그런데 갯벌에 작은 빨대같은 것이 막 꽂혀있네?
그녀가 두 눈을 빛내며 이것 저것 물어왔다. 저 빨대같은 건 뭐야? 저기 구멍 숭숭난 건 뭐야? 으으. 공부를 좀 하고 올 걸. 현생 생물은 잘 모른단 말이다. 맥가이버 칼을 꺼내 빨대처럼 생긴 주변을 파기 시작했다.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조개의 흡수관이었나 보다. 바다에 와서 전공병이 도지기 시작하는 그였다.
그는 레이더가 몇 개인걸까. 그냥 바다라고 생각하고 걷고 있건만, 그는 파도 끝부분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를 보고 얘기해줬고 (안 보인다고 했더니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댄다 -_-) 해변에 밀려와있는 말미잘, 조개(조개랑 다른 완족동물이랜다. 그게 뭘까 -_-)에 지나다니는 조그만 게까지 다 보고 있었다. 해변을 따라 걷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6월인지라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조개잡이에 열중하고 있는 나들이 나온 가족들을 제외하면, 바다가 있고, 모래밭이 있고, 그녀가 있을 뿐이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파도소리 외에는 그녀의 목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모래밭이라 발이 약간씩 빠지다 보니 계속해서 손도 스치고 있었다. 그는 그 손을 놓기가 싫어졌다.
같이 걷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살짝 살짝 그의 손이 그녀의 손에 와닿았다. 어느 때였을까. 그냥 잡고 있자라며 낮은 목소리가 살짝 들려왔다. 그의 손은 크고 따뜻했다. 왠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왜 바닥만 보냐며 묻는 그의 말에 '글쎄, 바람이 많이 불어서 머리카락이 눈을 찔러서일까?'라고 밖에 답하지 못했다. 나, 지금 수줍어하는 걸까?
주의산만 판정을 받을 정도로 넓었던 그의 레이더가 하나 둘 꺼지기 시작했다. 그의 숱한 더듬이들 가운데 남은 것은 그녀를 보는 눈, 그녀의 목소리만 듣는 귀,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손밖에 없었다. 그는 확신했다. 그 옆에서 같이 걷고 있는 그녀는 결코 그가 혼자 상상해낸 이미지가 아니라고. 그가 좋아했던 것은 그녀의 모습 그대로가 맞았다. 그가 좋아하는 그녀가 바로 옆에 있었다. 그는 발걸음을 늦추기 시작했다. 그가 말했다.
"있잖아."
"응?"
"어떻게 한 거야?"
"응? 뭘?"
"나, 너한테 빠진 것 같은데."
"어? 정말?"
"...."
"그럼 더 가까이~ >_<"
그녀는 그의 팔을 와락 끌어안았다. 처음에는 그가 움찔해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둘 모두 편안해졌다. 손을 잡고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체온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따뜻한 사람이다.
해변을 얼마나 걸은걸까. 두 세번 왕복한 것 같기도 한데... 한참을 걸었지만 그는 피곤하지 않았다. 서로 살아온 얘기, 즐거웠던 일들, 화났던 일들을 얘기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온 김에 명물이라는 꽃지 해수욕장의 일몰도 보고 가고 싶어졌다. 신발을 챙겨 다시 차에 올라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해지는 것이 예뻐보이는 곳이 있다고 해서 그를 따라 나섰다. 차 안에서도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굽이 굽이 돌아가는 해안도로와 소나무들이 더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 얘기를 오랫동안 같이 들어줬기 때문일까. 해는 서둘러 수평선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수 km남은 꽃지 해수욕장까지 가기는 무리일 것 같았다. 그는 'xx해수욕장'이라고 쓴 팻말을 따라 핸들을 급히 꺾었다.
일몰. 바다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이렇게 멋질 지 몰랐다. 그는 옆에서 '저런 걸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봐~'라며 이죽거렸지만, 그런 그 모습조차 좋다. 너무 아릅답다.
수평선 저 멀리 해가 져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간만에 바다에 나온 김에 이런 저런 사진도 찍으려고 했었지만, 카메라를 꺼낸 적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를 찍어주겠노라고 했다. 왠지 정면을 피한다.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도 예뻐보였다.
가물거리던 해가 수평선 아래에 감춰둔 것이라도 있는 것처럼 황급히 들어갔다. 하늘은 여전히 붉은 색이지만 밤의 푸른색도 슬며시 번져나오고 있었다. 그와 함께 울타리에 앉았다.
어느 새 시간이 이렇게 되었을까. 아침밥을 황급히 챙겨먹고 허겁지겁 집을 나선 것 같은데. 2주만에 그녀를 만나고 그녀와 바다에 왔고 그녀와 많은 얘기들을 하고 서로의 감정을 얘기했다. 어느 새 시간이 이렇게 되었을까. 저녁노을 빛을 받은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게 물들어있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살며시 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