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직장생활에 관해 얘기하다가 제가 하고 있는 노트 활용법 얘기가 나왔는데요. 사실 그다지 독창적인 건 아니라서(사실 Palm 쓰시는 분들은 이미 거의 다 아실 듯) '반짝반짝'이라는 분류 아래에 쓰기는 좀 애매한 글인 것도 같지만, 뭐 그냥 저냥 써보렵니다.
제목에 나와있듯이 '보통 수첩으로 메모 및 일정관리하는 법'에 대해 말해볼까 하는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프랭클린 플래너 방식을 보통 수첩에 옮겨보다'랄까요.
프랭클린 플래너! 이 얼마나 사람을 주눅들게 만드는 말이란 말입니까. '그냥 다이어리가 아니라 플래너입니다.'라는 광고 문구부터 무게를 잡고 들어가고, 처음 시작하기에 꽤 만만찮은 가격도 부담되고, 게다가 뭐가 그리 복잡한지 (실제로는 복잡하기보다는 귀찮은 측면이 있죠. :D) 플래너를 잘 활용하는 법을 다루고 있는 책들도 많고, 심지어 시간관리를 잘 하기 위한 공개 강좌까지 하고 있으니까요. 이쯤 되면 삶을 보람차게 만들기 위해 계획을 짜는 건지, 계획을 짜는 공부를 하기 위해 계획을 짜는 건지 좀 어리벙벙해질 때가 있지요.
프랭클린 플래너 류에서 다루고 있는 많은 항목들을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인생의 목표를 잡아 사명서를 쓰고, 거기에 대해 자신의 역할을 생각하고, 중장기 목표와 함께 단기목표를 잡아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해나가면 참 좋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저처럼 귀찮음에 몇 년간 절어있던 사람이 그런 방법을 듣고 '바로 이거였어!'하며 벌떡 일어날 턱이 없지요. 굳이 100% 모든 방법들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필수적인 것들만 챙겨봐도 괜찮지 싶습니다. 바꿔말하면 저같은 게으름뱅이라도 이 정도의 메모와 일정관리들은 챙기고 있어야 한다라는 그야말로 필수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준비물은 노트(!)면 됩니다. 크기는 손바닥보다는 커야 할 듯 하고 A4보다는 작은 게 좋겠죠. 전체 매수는 그래도 두 달 이상 커버할 수 있게 120-150쪽 정도면 준수하지 않나 싶군요. 저는 줄이 없는 노트를 좋아하는데 이건 뭐 취향이죠.
자, 그럼 다음 그림을 봅시다.
요게 제가 쓰고 있는 방식인데요. 정말 웬만한 건 다 빼내버리고 제게 있어 필요한 것만 살려놓은 형태입니다. 그림은 노트를 펼쳐 양쪽 면을 볼 수 있게 해놓은 것입니다. 가운데 굵은 선이 제본선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프랭클린 식의 포인트는 그림처럼 하루라는 시간용으로 무조건 두 페이지를 할당하는 것입니다. 맨 왼쪽 위에 날짜가 적혀있듯이, 하루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 양쪽 페이지를 쓰는 겁니다. 종이를 앞으로 한 장 넘기면 03/18의 쪽이, 뒤로 넘기면 03/20이 있는 것이죠. 한 달을 쓰려면 2x30=60쪽, 두달이면 2x30x2=120쪽. 계산 간단하죠?
자, 먼저 왼쪽 페이지를 봅시다. 왼쪽 페이지는 또 절반으로 나눠서 왼쪽에는 할일, 회계, 오른쪽에는 시간별 일정을 적으면 됩니다. 원래 프랭클린 플래너에는 할일의 위쪽 공간에 그 달의 달력이 작게 인쇄되어 있어서 꽤 유용한데, 뭐... 없으면 좀 아쉽긴 하지만 못 쓸 정도는 아닙니다. ^^
'할일'은 정말 맘편히 할 일을 적으면 됩니다. 여타 시간관리, 자기관리 책 등에서는 할 일을 세분할 것을 권합니다. 시간의 4분면에 넣고 중요도에 따라 A1, B3, C2하는 식으로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들이 많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얘기하고. 일단 맘편히 적습니다. 뭘 잊지 말고 가져오기로 했다던가, 누구한테 전화해서 약속을 잡아야 한다라거나 등등등을 적습니다.
할일을 하나 끝내면 즐거운 마음으로 '찍-'하고 그어줍니다. 그날에 못 끝낸 일은.... 원칙(?)대로 하면 다음날 페이지에 옮겨적어서 다시 의지를 불태워야겠지만, 귀찮다면 그냥 그대로 두고 다음날에 전날이나 전전날 페이지를 뒤적여보면 됩니다. 다만 주말 정도에는 한 번 점검을 해서 해야할 일들 가운데 얼마나 했고, 얼마나 못했는지를 보고, 못한 일들은 새로 한 주에 적어주는 것이 좋겠죠.
그 아래의
'수입/지출' 부분은 사람에 따라서 많이 다를텐데. 제 경우는 수입이라는 게 뻔한지라, 지출만 신경쓰면 됩니다. 뭐 자신의 총자산이 얼마(앗... 이것도 뻔하다..;;)이고 한달 총지출이 얼마이냐를 파악하는 것이 흔히 말하는 재테크의 첫걸음이라고 하니까요. 저는 이걸 어떻게든 해보고 싶어서 그동안 PDA 등에서 아둥바둥 해봤습니다만, 결국은 하루 이틀 입력을 까먹고 안 했다가 멀어지더라고요. 백단위는 잘라버리고 '점심 0.3만'하는 식으로 적고 있는 중입니다.
왼쪽 페이지의 오른쪽 부분에는
'시간별 일정'을 적습니다. 프랭클린 플래너에는 이게 아침 8시부터 자정 정도까지 시간대별로 칸이 그려져 있습니다만, 뭐 굳이 그렇게 빡빡하게까지 살지 않는다면 페이지의 맨 위를 아침 8시 정도로 그리고 맨 아래를 자정 정도로 생각하면서 마음의 눈으로 칸을 그리고, 대충 시간을 적어두면 되겠죠. 'am10:00 치과진료', 'pm 8:00 술약속 @ 강남역'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싶어요.
PDA와는 달리, 종이의 경우 반복일정이나 일정 변경같은 걸 일일이 써줘야 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행동 일지'처럼 쓸 수 있다는 건 종이의 장점이지 싶습니다. 뭔말인가 하면, '시간별 일정'에 일정과 함께 간단한 일기를 쓰는 겁니다. '누구랑 어디서 뭐하고 놀았다', '뭐가 재미있었다' 등등등 한 두 문장으로 간단히 정리해두면 저같이 단기 기억력이 치명적일정도로 나쁜 사람도 며칠 전 자신이 뭘 했는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른쪽 페이지는 전부
'메모'로 쓰시면 됩니다. 메모를 잘 하는 법에 관해서는 '
메모의 기술'을 읽어보시면서 활용하면 될텐데. 제가 추천하는 바는 "나중에 안 볼 것 같은 것은 적지 말고, 한 번이라도 돌아볼 가능성이 있는 건 뭐든지 다 적어라."라고 정리할 수 있겠군요.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감정은 다른 곳에 낙서로 토해내던가 하고, 이 곳은 객관적인 정보들로 채운다."라고나 할까요.
거창할 거 없습니다. 전화가 온다거나 하면 페이지부터 펴놓고 전화기를 드는 겁니다. 통화내용을 요약해서 적으면 됩니다. 이메일이나 메신저, 쪽지 등으로 뭔가 기억할만한 연락처라던가 장소, 시간 약속등이 오면 일단 다 여기다 기록합니다. 나중에 찾아보기가 정말 무지 쉽습니다.
그 외에 온갖 것(?)들을 덕지덕지 붙이는 것도 괜찮습니다. 어딘가를 찾아가야 할 일이 있다면 약도를 인쇄해서 붙이는 것도 괜찮고, 누군가를 만나고 왔다면 그 사람의 명함을 붙여두는 것도 좋고, 누군가에게 송금을 했다면 입금증 같은 걸 붙여두고, 요긴한 영수증이 있다면 이것도 붙여놔도 되죠. 영화표나 공연표 같은 걸 별도의 티켓 저널 등에 해놔도 좋지만 그냥 여기에 붙여놔도 나름대로 예뻐요.
그런 것들까지 붙이기에는 메모 공간이 좁다라면, 해당일의 페이지에 '어느날 페이지 참조' 정도로 써놓고 전날 페이지들 가운데 널널한 곳을 골라서 붙여놓으면 됩니다. 뭐, 남한테 잘 쓴다고 검사받으려고 쓰는 것도 아니니 자기 편하면 장땡이지요. 흐흐.
음, 또 쓸데없이 글이 하염없이 길어지는 분위기군요. 오늘 자 제 노트를 스캔해 올리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흐흐. (사실은 글씨도 흘려 썼던 거 지우고 다시 고쳐쓰고, 다른 날짜 내용을 옮겨오기도 하고 그랬어요. ㅠ_ㅠ)
ps : 요는 '도구'가 문제가 아니란 말이지요. 수만원에 달하는 프랭클린 플래너도, 일정관리에 있어서만큼은 그 간결하고도 편리함을 따라올 자가 없는 Palm PDA도 본인이 번거로워서 혹은 지나치게 많은 걸 쓰도록해서 부담감에 안 쓰게 된다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얘기.
ps2: 음, 이런 방식으로 노트를 쓰면 '백업'에 문제가 있긴 합니다. 바인더 계통의 노트들은 해당 달을 빼고 새 달의 페이지를 넣으면 되지만, 노트의 경우는 노트를 다 쓰고 나서 새 노트로 이동하고 나면 다소 멍-해지는 경우가 있죠. ("어, 그거? 잠깐만 노트에 메모해놨었거든. ..... 어... 나 노트 새로 바꿔서 휑하게 백지다. ㅠ_ㅠ"같은 상황을 저는 한 번 겪었습니다.) 노트를 다 썼을 때는 앞에서부터 뒤로 훑으면서 필요한 정보들을 새 노트에 옮겨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저는 백업에 Palm을 쓰고 있지만요. :)
ps3: 저는 필요없어서 안 쓰고 있지만, 프랭클린 플래너의 weekly compass는 좋아하는 분들이 많으니 그것도 시도해보시는 것도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