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FZ30 사용기에서도 얘기했지만, FZ30을 계속 쓰기에는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성능상으로는 그다지 흠잡을 곳이 없었지만, 어두운 곳에서 조금 약했고 조금 크고 무거운 탓에 집에 두고 다니는 일이 잦아 정작 필요할 때 손에 없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사진을 좀 더 제대로 자주 찍어보고 싶어 새로운 카메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1. DSLR? 먼저 생각한 것은 니콘 D40, 올림푸스 E410 등의 보급형 DSLR들이다. DSLR이라면 노이즈 등을 신경 쓰지 않고 내 기호에 맞춰 렌즈를 선택해가며 사진을 ‘제대로’ 찍어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사진의 결과물만 놓고 보면 DSLR이 가장 좋은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막상 DSLR을 고르자니 걸리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먼저 DSLR의 그 ‘덩치’. 요새 소형 DSLR 바디들이 많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DSLR은 크다. 게다가 렌즈까지 갖고 다니면 더 크다. 가벼운 렌즈만 끼워서 늘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줌/망원/접사 등 다양한 화각에 대한 욕심이 많다.
야외조사 때는 그게 욕심이 아닌 필수가 되는데, 그 경우 들고 다니는 걸 생각하면 까마득했다. FZ30도 무거워 힘들었고 평소에 거의 안 갖고 다녔는데 DSLR을 책가방에 넣고 다닐 엄두가 안 났다. 더불어 취향에 맞는 렌즈들을 구비하기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DSLR의 보급화와 더불어 바디 가격은 굉장히 낮아졌지만, 렌즈는 여전히 비싼 렌즈들이 많아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나는 가끔 동영상도 유용하게 사용하는데, DSLR에서 그런 걸 기대할 수는 없었다.
2. DSLR + 서브 디카?그래서 생각한 게 주된 카메라로는 DSLR을 쓰되, 동영상 잘되는 작은 카메라를 하나 더 해서 서브로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이 경우 산요의 작티 제품군들이 끌렸는데, 늘 갖고 다니며 동영상을 자주 찍고 사진으로도 메모를 잘 남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작티 시리즈는 카메라와 캠코더 양쪽의 장점을 갖고 왔음에도 어딘가 어정쩡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메모용’이라고 해도 정지화상이 그럴싸하지 않다면 들고 다닐 이유가 없어 보였다. 카메라를 두 대나 가져야 할 정도로 동영상 기능을 절실히 원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3. 컴팩트 디카?자연스레 그냥 작은 거 하나 늘 들고 다니면 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DSLR이 무슨 완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몇몇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DSLR에 대해 왠지 모를 심리적 거부감마저 있었고, 돌이켜보면 맨 처음 컴팩트
디카로 사진을 찍을 때가 가장 사진을 즐겼던 때인 것 같아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더구나 요새는 기술이 발전해서 컴팩트
디카들이 성능조차 꽤 좋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루믹스 LX2나 TZ3 등등 수많은 컴팩트
디카들을 또 찾아 헤맸다. 그 가운데 루믹스 LX2는 광각과 더불어 웬만한 수동 기능을 지원하는 데다가 어딘지 모르게 필름 카메라의 느낌이 풍기는 모습도 있고 해서 꽤 끌렸다. 중고 물건 거래 직전까지 갔다가 판매자 쪽에서 취소하는 바람에 불발되는 경우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는 끝내 ‘성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는 못했다. 컴팩트의 크기는 매력적이었지만, 아무리 화소 수를 높여도 컴팩트의 카메라로서의 성능은 하이엔드나 DSLR과는 분명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4. 내게 있어 사진은…?이 때부터 참 무의미한 날들이 시작됐다. DSLR과 컴팩트 카메라가 양쪽에 놓인 천칭은 매일 기분에 따라 하릴없이 흔들렸고, 어떤 카메라와 만날까 설레던 마음도 옅어졌다. 아니, 설레기는커녕 어느 순간부터는 카메라를 고르고 있는 것이 짜증나기조차 했다. 문제의 분석을 다 끝냈는데 답을 못 적고 있는 경우랄까.
그래서 다시 제일 처음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내게 있어 사진은 무엇일까 하는 그 고민 말이다.
고생물학이 전공이다 보니,
화석 사진이나
야외조사 사진 등 설명적인 사진들을 참 많이 찍어야 했지만, 하루 하루의 모습들을 담는 것도 재미있었다. 가족들과 나들이 갔을 때 기념 사진 찍는 것도 소중했고, 가끔은 뭔가 멋진 걸 담고 싶어하며 감성을 재충전하는 도구로 쓰기도 했다. 뭔가를 담아 웹에 올린다거나 하는 기록으로서의 가치도 컸다.
이렇게 차분히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경우 사진은 내게 있어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진을 제대로 된 취미로 삼기에는 이미 내가 즐기고 있는 여흥이 너무나 많다.) 이런 결론을 내리고 나니 카메라 앞에서 ‘이왕이면’ 병에 걸리지 말고 제일 필요한 기능/가치를 고르되, 그 외에는 선택적으로 포기하기로 마음 먹을 수 있었다.
5. 하이엔드 카메라, 그리고 G9DSLR은 가격을 계속 낮추고, 컴팩트 카메라는 성능을 높이는 덕에, 그 중간에 있던 하이엔드 카메라는 샌드위치가 되어 버렸다. 하이엔드를 살 돈이라면 조금 더 보태서 DSLR로 가는 것이 낫고, 하이엔드 정도의 결과물이라면 조금 더 저렴하고 작은 컴팩트 카메라로도 어느 정도 흉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하이엔드가 딱 맞춤이었다. DSLR에 비하면 크기가 작고 별도의 렌즈 없이 카메라 한 대로 비교적 다양한 화각을 소화할 수 있었다. 컴팩트 카메라에 비하면 조금 크긴 하지만 DSLR이 크게 부럽지 않은 수동 기능과 광학 성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가격은 보급형 DSLR의 중고가격과 비슷한 선이 되겠지만, 렌즈 등의 추가 비용이 필요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이엔드로 마음을 굳히고 나니, 카메라는 오히려 쉽게 고를 수 있었다. 기존에 쓰던 FZ30이 하이엔드 카메라였던 만큼, 내가 아쉬워 한 휴대성이나 노이즈 처리 부분을 조금 더 신경 쓰는 대신, 광각이나 망원 등 특정 화각에는 크게 연연해 하지 않기로 했다. 하이엔드를 쓰기로 한 이상 그동안의 시행착오가 많이 축적되었을 메이저 브랜드의 제품군을 선택하기로 했고, 캐논의 G 시리즈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캐논 G9가 내 손에 들어왔다.
DSLR과 컴팩트 카메라 사이에서 하이엔드에 이르기까지 긴 고민을 한 것에 비하면, 카메라를 고르는 데에는 하루 이틀 정도의 짧은 시간만 걸렸지만 선택은 만족스러웠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처럼 이번 카메라는 손때 자주 묻히며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ps : 'DSLR, 컴팩트
디카의 장단점을 비교 후 하이엔드를 선택하자'는 A4 한 장에 달하는 이 글의 뼈대를 수첩에 적어 놓은 건 무려 9월 13일의 일이다. 그로부터 한 달 후에야 실제로 카메라를 샀고, 또다시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서야 글을 정리해 웹에 올리고 있다. 이거 무슨 와인 숙성 시키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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