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예지자'가 아닌 '역사가'였다.

Posted 2008/06/24 23:59, Filed under: Aladdin
마이너리티 리포트마이너리티 리포트8점



그들은 '예지자'가 아닌 '역사가'였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개봉을 앞두고 소개된 필립 K 딕(1928-1982)의 단편집이다. 필립 K딕의 작품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외에도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토탈 리콜, '휴머노이드는 전자양을 꿈꾸는가' - 블레이드 러너 등 여러 편이 영화화되었는데, 그만큼 그의 상상력이 시대를 초월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책에는 책 제목인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포함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SF답게도 작가가 살고 있는 현재 사회를 토대로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디스토피아인 미래사회를 보여주며, 작가가 살고 있는 시대상을 그려내고 있다.

각 작품의 정확한 연대까지는 모르겠지만, 1982년 생을 달리한 작가의 삶을 감안하면, 필립 K 딕은 소련이 무너지기 전의 사회, 즉 냉전시대를 살았다. 그 무렵 전세계는 미국과 소련,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둘을 양 축으로 흑과 백으로 극명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이러한 이념대립으로 미소 양국은 서로 소모적인 군비 경쟁을 시작했고, 덕분에 지구 상에는 모든 생물을 수십 번이라도 멸종시킬 수 있을만한 핵무기들이 생겨났다. 핵무기의 위력에 대한 두려움이 컸을 것이고, 가공할 무기 앞에서 인간 개인이 과연 그런 책임을 질 수 있을만한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을 것이다.

이 책의 단편들은 모두 그런 맥락에 묶여있다. 냉전 상황에서 양 진영은 흑/백을 강요했고('그래, 벨로벨이 되는거야.'), 자연스레 사회는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는 방향('스위블')으로 흘렀다. 혹시나 핵전쟁이 터진다면 우리가 자랑했던 문명이나 가치들이 모두 황폐해질 것이며('퍼키 팻의 전성시대'),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핵으로 인한 돌연변이('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나이', '우리라구요!')일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개인의 판단이 아닌 좀 더 체계적이고 오류없는 의사 결정시스템('마이너리티 리포트', '완벽한 대통령')을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작가가 그리듯 그게 잘 작동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유머를 곁들이며 SF 작가들을 '예지자'로 등장시켰지만('물거미'), 내가 보기에 그는 예지자라기보다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역사가였다.

ps: 무려 16개월(!) 전에 구글 닥스에 써두고 묻어놨던 글을 조금 다듬어 올렸다.


2008/06/24 23:59 2008/06/24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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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8점
도보 세계 여행, 특히 오지여행으로 유명해진 한비야 씨가 국제 NGO 월드 비전에 참여해서 수년 동안 열정을 다해 긴급 구호 활동을 해오며 겪은 얘기들을 다루고 있다.

당연히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긴급 구호가 필요한 세계 각지의 현실이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곳곳에서 기아, 빈곤, 전쟁, 질병, 폭력, 자연재해 등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에 대한 불만 때문에 ‘이민을 가겠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분명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먹을 것이 없어 독초라도 캐먹어야 하거나, 씨앗 살 돈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거나, 계속된 폭격으로 식수가 끊겼다거나, 에이즈에 감염될 걸 알면서도 몇 푼의 돈 때문에 매춘을 해야 한다거나, 내전 때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포로를 잡아/포로가 되어 손목을 자르거나/손목이 잘리거나 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얘기이다.

이런 다른 세상에서 한비야 씨와 월드 비전은 긴급 구호 활동을 한다. 각각의 상황에 맞춰 다양하게 대응하는 긴급 구호 활동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는데,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그네들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방식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물론 한비야 씨가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 이런 긴급 구호 활동은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한비야 씨의 비유를 따르자면, 건물 복도에 수도를 틀어놔서 복도에 물이 흥건한데 긴급 구호 활동으로 급한 대로 물을 닦아내도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는 한 아무리 닦아내도 복도는 또다시 물바다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활동이 평가절하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들이 활동하지 않았다면 복도의 물을 조금이나마 닦기는커녕, 복도에 물이 흥건하다라는 사실조차 알기 힘들었을 테니까.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사람’의 역할이다. 월드 비전은 굉장히 큰 단체이고, 구호 활동에 있어서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운영 원칙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합리적인 조직이라도 결국 직접 현장에서 일의 성패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매뉴얼보다는 사람이라는 것을 책을 읽으며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다. 사소해 보이지만, 상대방의 언어, 인사, 관습을 존중하다 보면 그만큼 서로 이해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일이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노련한 여행가인 한비야 씨는 그만큼 인간 관계에도 노련했는데, 결국 살아온 세월이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을 만들어 가는 세월.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나로서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한비야 씨의 신앙에 대한 얘기도 참 좋았다. 지난 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무리한 선교 활동으로 피랍되었던 이들과 한비야 씨가 정말로 같은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신의 일을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힘든 일이 있을 땐 버팀목으로 삼고, 틈날 때마다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믿음이 부러웠달까.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좋은 책이다. 새삼스럽지만 세계는 참 넓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말고도 ‘다른 세상’이 많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좀 더 보는 눈을 넓힐 필요가 있다. 단순히 대한민국이라는 국경, 즉 지도의 경계에 생각을 가두지 말고, 더 큰 세상에서 소명을 찾는 것. 그것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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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5 02:11 2008/05/05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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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반지
콘라트 로렌츠 지음, 김천혜 옮김/사이언스북스


어느 날, 산호 어항에 대한 흥미(그러니까 수초와 다른 어항들이 균형을 이루어 조건만 맞춰주면 그대로 유지되는 작은 생태계에 대한 흥미)를 보이자, 한 선배가 이 책에 보면 로렌츠가 시내물에서 물을 떠와서 생태계가 균형을 맞추는 것을 관찰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꽤 재미있게 읽었고, 감상을 말하자면...

음.. 이 책은 '콘라드 로렌츠의 수필집'이다. 이상! 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으로 끝내면 욕먹겠죠? -_-?

저 간단한 말이 이 책에 대한 모든 걸 얘기해주지만, 늘 하던 것처럼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해보죠 뭐.

From Campbell, Biology,  2nd ed, Benjamin/Commings publishing company. 1146p
먼저 콘라드 로렌츠가 누구인지 알면 될 것 같네요. 콘라드 로렌츠, 콘라드 로렌츠..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하면 '각인'이라는 말과 '기러기'라는 말을 힌트로 드리죠. 아직도 아리송하다면, 오른쪽의 그림을 보시면 됩니다.

어디에서 많이 본 그림 아니던가요? 먹이통을 들고 걸어가는, 후덕한 뒷모습의 할아버지와 그를 열심히 따라가는 새끼 기러기들. 그렇습니다. 이건 과학 교과서에서 본 그림입니다. (교과과정 개편 후로는 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

기러기들은 부화할때 처음 본 동물을 자신의 어머니로 생각하고 계속해서 따라다닙니다. 부화할때만 어미 기러기에서 떼어놓고 알에서 깨어날 때 사람이랑 만나고 나면 나중에 자신의 실제 어미인 어미 기러기를 봐도 무심해하고 처음 본 사람만을 자신의 어미로 생각해서 죽도록 따라다니는 이것.

바로 기러기의 '각인'(imprinting)이라고 부르는 행동양식입니다.

그리고 저 앞에 할아버지는 이 새끼 기러기들에게 '어미'로 찍힌 사람이죠. 그가 바로 기러기의 '각인'을 최초로 연구한 콘라드 로렌츠, 이 책의 저자입니다.

다소 후줄근해 보이는 뒷모습으로 그를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콘라드 로렌츠. 그는 일반생물학 교재나 동물행동학 교재의 뒤에서 색인을 찾아보면 반드시 있을 정도로 현대 생물학계에 큰 획을 그은 사람입니다. 동물의 행동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비교행동학'이라는 분야를 만들어낸 그는 1973년 이러한 업적들로 노벨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죠. 어떤 사람들은 20세기에 큰 영향을 끼친 과학자들 가운데 그를 아인슈타인과 거의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기도 한다죠. 뭐, 이런 것들을 다 떠나서, 그의 연구가 없었다면 현재 우리가 동물의 행동에 대해 아는 것은 크게 적었을 테고, 동물의 행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또한 없었겠죠.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콘라드 로렌츠의 수필집입니다. 책 제목인 '솔로몬의 반지'라는 것은 한 수필 제목이지요. 독일어 책의 원제를 우리 말로 풀면 '그는 짐승, 새, 물고기와 이야기했다'라고 하는데, 원제가 좀 더 책의 내용을 드러내주고 있는 듯 하네요. 다시 말해 이 책은 로렌츠가 동물들과 살아오면서 (연구를 했다기보다 정말 동물들과 살아왔다는 게 맞는 표현인 듯) 겪은 경험들을 적어놓은 것입니다.

책은 '서문'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조금 옮겨볼까요?

'(전략) 내가 살아오면서 분노로 어떤 일을 행했다면 그것은 이 동물 이야기를 쓴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에 대한 분노인가?

그것은 오늘날 모든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믿을 수 없을만큼 시원찮고 거짓된 수많은 동물 이야기에 대한 분노이고, 동물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 동물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자처하는 많은 글쟁이들에 대한 분노이다. 꿀벌의 입을 벌려 소리를 지르게 하는 사람이나, 가물치가 서로 싸울 때 목덜미를 물게 하는 사람은, 자신의 관찰과 사랑에서 서술한다고 자처하는, 그 동물의 모습에 대해서 결코 순수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후략)'

이 책이 처음으로 씌어진 1949년 독일에 어떤 책들이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정확하고 과학적 오류를 불러일으키는 책들로 인해 그가 굉장히 분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무책임하게 쓰여진 동물 이야기들이 독자들에게, 특히 동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오류를 가져다 줄 것인지 가히 짐작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죠.

잘 모르는 사람들이 책 팔아먹기 위해서 사육협회같은 데에서만 자료받아서 책을 써내고 나는 동물을 잘 아네, 사랑하네..라고 얘기해대며 로렌츠의 속을 벅벅 긁어놓았던 거죠. 빗대어 얘기하자면, 어디서 같잖은 비급 하나 들고 고수임을 자처하며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시정잡배들 때문에 자연을 벗삼아 은둔하며 내공을 갈무리 중이던 절대 고수가 노기탱천하여 '진정한 무의 경지를 보여주마.'라며 분연히 강호에 왕림...하셨다고나 할까요? ^^

그렇다고 이 책이 그런 사람들을 비판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거나 시종일관 짜증이 섞여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 시정잡배들에게 화가 나서 책을 쓸만큼, 분노는 사랑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는 정말로 순수하게 동물들을 사랑했고, 책에는 그런 그의 마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담겨있습니다.

그럼에도 첫 장의 제목은 '동물에 대한 짜증'입니다. 온집안에 동물들을 '풀어놓고' 사는 그의 집에서 일어난 우울한 얘기들이죠. 길들인 쥐는 이불을 갉아먹고, 기러기의 배설물은 가구와 카펫에 묻어서 지워지지 않고, 기러기들은 정원의 장미를 뜯어먹기 일쑤고, 원숭이는 중요한 책들을 죄다 찢어놓고. 한마디로 읽다보면 난리도 아닙니다.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그런 난장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짜증과 손해를 보상해 주는 것이 학문적 성과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이어서 자신이 지금까지 관찰해온 동물들, 그리고 그 동물들과 겪었던 경험들을 담담하게 써내려갑니다. 진부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자연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들입니다. 상대를 아름다운 춤으로 유혹하는 싸움고기의 수컷이라던가, 자신들안에 위계서열이 뚜렷한 갈가마귀 사회, 자신을 어미로 알고 따라다니던 기러기들, 충직한 눈으로 자신의 모든 걸 주인에게 내맡겼던 개 등등. 그와 함께 해온 동물들이 그의 글에서 다시 살아 숨쉽니다.

정말 '유려하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그의 문장(번역도 꽤 좋은 편입니다.)이 그의 내공(!)과 맞물려, 글을 정신없이 읽게 끔 합니다. 흔히 동물 관찰기로는 '파브르 곤충기'와 '시튼 동물기'를 꼽는데, 콘라드 로렌츠의 이 책도 그 반열에 함께 올라가야 합니다.

더불어 이 책에는 그가 글 내용에 맞는 삽화들을 그려놓곤 했는데, 이해도 잘 될 뿐더러 가끔은 그 그림들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곤 합니다. 한 두가지만 예를 들어보자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왼쪽의 것은, 로렌츠와 살고 있는 기러기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웬만해선 쫓아내기 힘들다고 하는데, 정원의 장미를 뜯어먹는 기러기들을 쫓기 위해 로렌츠의 부인이 붉은 정원용 파라솔을 펼쳐들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드는 장면입니다. 기러기들도 저런 광경엔 놀라 도망간다고 하는군요. ^^ 오른쪽의 것은 기러기의 어미 노릇을 하는 로렌츠가 기러기 새끼들을 산책시키러 나갈 때의 일인데, 기러기 새끼들을 따라오게 하려면 기러기 정도로 몸을 낮추고 가끔가다 '꽥꽥' 소리를 내야 한다고 하는군요. 그것에 한참 열중해서 덤불을 지나고 있는데 이상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보고 있더래요. 사람들의 위치에서 새끼 기러기들은 풀에 묻혀서 보이지 않고, 웬 나이먹은 콧수염난 아저씨가 오리 걸음을 걸으며 '꽥꽥'하는 것을 보고 있었던 거라죠. 허헛.;;

이 외에도 여러 그림이 있어서 책 읽는 데 또다른 맛을 준다죠.

책 크기도 작은 편이고 그리 두껍지도 않고(230여쪽) 비전공인 사람들을 위해 쓴 책이니만큼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콘라드 로렌츠의 동물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2007/03/03 15:42 2007/03/0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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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로를 닮아가는 상호각인 현상 - 정혜신의 그림 에세이 일백아홉번째 이야기 중에서

    Tracked from I Love You - 송인혁의 삶과 사람 그리고 사랑 2008/07/17 08:17 Delete

    푹푹 찌던 무더위가 드디어 장마비가 내리면서 한풀 꺾이는 모습이네요. 며칠동안 밤에 잠들기가 썩 편하지 않더니 어제는 무척 편하게 잠들었더랬습니다 ^^ 아... 다시금 홍콩 사람들을 비롯,

  1. # 2007/03/09 19:38 Delete Reply

    책 오빠꺼야? 나 빌려줘~

    1. Re: # HaraWish 2007/03/10 12:49 Delete

      어, 예전에 빌려 읽었던 책인데. 다시 도서관에서 빌려다줄까? 그런데 '누'가 뭐냐 '누'가..

  2. # 2007/03/15 16:36 Delete Reply

    '누이'라고 쓰는게 귀찮았어 -ㅅ-

    -다시 도서관에서 빌려줘 ;

    1. Re: # HaraWish 2007/03/17 16:54 Delete

      웅. 다음 주에 빌려줄께. 근데 요새 볼 시간이나 있겠냐?

  3. # 방랑자 2007/08/19 10:08 Delete Reply

    잘봣습니다.

  4. # 송인혁 2008/07/17 08:18 Delete Reply

    안녕하세요 하라님. 이 글 보고 당장 책 구입을 했습니다 ^^ 그냥 각인현상만 알았지 콘라트 교수의 그런 동물과 자연에 대한 사랑, 열정을 인식할 만한 계기가 없었던 것 같네요. 제 블로그에도 하라님 글을 인용했는데 괜찮지요? (트랙백 달아놨습니다) 감사합니다! ^^

    1. Re: # HaraWish 2008/07/23 15:01 Delete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재미있는 책이에요. 댓글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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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 파탈
이명옥 지음/다빈치
2004년 초에 샀던 책인 것 같은데, 책을 손에 넣고 재미있게 읽다가 끝을 조금 남겨뒀었는데 마저 읽었다. 기본적으로 그림책인데 너무 오래 걸린 듯. ^^

Femme Fatale. 직역하자면 치명적 여인이라고 풀 수도 있겠고, 흔한 말로는 '요부'라고도 풀 수 있는 이 말. 뇌쇄적인 성적 매력과 함께 다방면에 걸친 재능들을 발산하여 남자들로 하여금 '어, 이 여자를 가까이 했다간 내가 망가지겠는데?'라는 위험신호가 머리 속에서 삑삑삑 울리는데도 불을 본 나방처럼 달려들게끔 하고, 결국 그 남자들을 파멸시키는 여자...라고 보통 얘기한다. (뭐, '삼손과 데릴라'라던가 혹은 '트로이 전쟁의 헬레네'라던가 등등등)

뭐 팜므 파탈의 사회적 맥락에 대한 보다 자세한 얘기는 다른 책들을 본다거나 해야 할텐데, 일단 이 책을 집어든 원인이라면 솔직히 말해서 나 자신도 팜므 파탈의 '이미지'에 확 끌려버렸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볼 무렵에 본 영화 '젠틀맨 리그'의 뱀파이어 '미나'를 보고 "오오오-"하는 탄성을 질렀기 때문이랄까?

책을 집어들고 휘리릭 넘기는데 책에 실린 그림들을 보자니, 뭔가 엄청나게 불안정해보이고 동시에 가까이 하기에는 어딘지 위태위태해보이지만, 그 아슬아슬한 매력이랄까. 그런 것들이 눈길을 휙 잡아끌었다. (표지조차 그렇지 않은가. 클림트의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II'인데 어딘가 무신경해보이는 저 여인과 그 여인의 손에 들린 남자의 머리라니.)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잔혹, 신비, 음탕, 매혹이라는 네 개의 주제어에 각각의 팜므파탈들을 모아놓고, 그 여인 하나 하나의 그림들을 쭉 모아놓고 얘기를 풀어가는 구성 방식이라 하겠다.

예를 들면 '잔혹'에는 살로메, 메두사, 유디트 등이, '신비'에는 키르케, 세이렌, 클레오파트라, 조제핀 등이, '음탕'에는 들릴라, 나나, 메살리나, '매혹'에는 헬레네, 비너스, 해밀턴 부인 등을 싣고 있는데, 그 가운데 유디트를 설명할 때는 유디트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사회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유디트를 그린 그림들을 같이 배열하면서 각 화가들이 유디트라는 한 인물을 각자 어떤 식으로 해석했는가 하는 해석도 곁들이고 있어서 글을 읽는 것도 꽤 즐거웠다.

고대로부터 팜므 파탈은 화가의 좋은 주제가 되곤 했지만, 팜므 파탈이 아예 시대의 화두가 된 것은 19세기였기에 책은 19세기 화가의 그림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전반적으로 굉장히 부드러운 느낌을 주면서도 색깔 자체는 어두운데도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이런 분위기의 그림들을 좋아해서 (뭐...뭔가 좀 우울한가?) 그림을 보는 재미들도 꽤 좋았다. (클림트의 그림들은 대충 지나가다 본 적이라도 있었지만, 이 책으로 알게 된 워터하우스의 그림들은 진정 멋졌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어 by 워터하우스


흠을 하나 잡자면, 주제를 잡고 그림을 선정하고 이에 대한 역사적 배경 지식을 설명해주는 지은이의 솜씨에 비해 정작 지은이의 관점은 약간 산만해보인다라는 점이다. 음.. 뭐라고 콕 집어 얘기하기는 좀 힘든데 이를테면 팜므 파탈에 대해 '정숙하지 못한'이라거나 '타락한 영혼'과 같은 말을 붙이는 건 어딘가 조금 맘에 걸렸다. (지은이가 여성이라서 그런 부분을 더 많이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뭐 그런 얘기는 팜므 파탈을 본격적으로 다룬 사회과학 서적 등에서 보충하기로 하고, 이 정도는 옥의 티라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어떤 '시대 사조'나 특정 화가의 작품들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특정 인물이나 특정 주제를 잡고 그림들을 소개해나가는 것은 꽤 맘에 드는 구성이었고, 그림을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에게 첫 발걸음을 떼게 하는 데에는 꽤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ps : 지은이의 전공이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전부 서양의 인물들인데, 동양의 인물, 혹은 보다 좁혀서 한중일에서의 팜므 파탈(?) 그림들도 모아서 서로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당장 떠오르는 것이라면 삼국지에서 동탁-여포 사이를 오갔던 초선이라던가, 사랑이냐 조국이냐를 고민했던 낙랑공주라던가, 왜장을 껴안고 투신한 논개라던가 굉장히 많을 것 같은데... 일본 쪽에선 우키요에 같은 것이 뭔가 관련되어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ps2: 사실 단순히 '이미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뱀파이어 vs 구미호의 이미지가 같은 페이지에 실려서 서로 충돌하는 걸 보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_' 볼만할 것 같은데. :)

ps3: 예전 글 다시 끌어올렸습니다.
2007/02/19 18:09 2007/02/1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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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폴라리스 랩소디

Posted 2006/12/17 00:13, Filed under: Aladdin
폴라리스 랩소디 1
이영도 지음/황금가지

잡을 때마다 후닥닥 읽어버렸기 때문에, 네 번째로 읽는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읽으려 했지만, 또 밤을 지새우며 허겁지겁 읽어치울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때부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를 말해보라는 질문을 받으면, 별로 생각않고 '이영도'라는 세 글자를 적어넣게 되었다. 비록 내가 읽은 가장 최근작인 '피를 마시는 새'는 전편에 비해 덜 만족스러웠지만, 데뷔작이라 할 드래곤 라자에서 큰 호평을 받은 눈물을 마시는 새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영도 씨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떤 것이냐라고 물어본다면 약간 고민하긴 하겠지만, 나는 '폴라리스 랩소디'를 꼽는다. 가장 훌륭한 것을 꼽으라면 '눈물을 마시는 새'(이하 눈마새)를 선택하겠지만, 어떤 것이 더 좋냐고 한다면 눈마새보다는 어딘지 힘이 덜 들어간 듯한 '폴라리스 랩소디'를 사랑한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폴라리스 랩소디'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전작들처럼 엘프와 드워프가 나오는 톨킨형 판타지는 아니다. 하지만 마법사가 있고 용이 날아다니고 악마가 있고 신화가 있고 전설이 있는 그런 판타지인 것은 맞다.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는 것이 해적단이다 보니 해양 액션 활극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고, 쇠약해진 제국 내에서 제후국들의 전쟁, 그리고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으니 중세 전쟁물 혹은 역사물 혹은 정치물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무엇이라 분류하든 간에 '폴라리스 랩소디'의 가장 큰 미덕은 '재미'이다.

먼저 가장 재미를 주는 것은 정말 개성 뚜렷한 인물들이다. 대사도 어느 정도 있고, 극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인물이 대략 40여명 정도 되려나? 해적단의 여덞 선장을 비롯해 그의 반대쪽에 서있는 인물들까지 다들 개성이 뚜렷하고 이를 비교해보는 맛도 있다. 거기에 이 인물들이 서로 지지고 볶고 만담을 펼치는데(라이온-서 슈마허, 데스필드-파킨슨 신부), 이것이 이영도 씨 글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정말 재미있는 것이 바로 원정대 혹은 추적대의 여정이다. 비유하자면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추락 장면이나, 오우삼 영화의 비둘기 날아다니는 장면(이건 좀 낙관같은 맛이 있지만)처럼 원정대/추적대는 이영도 씨 소설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다. 시시각각 변하는 배경들과 함께 쫓고 쫓기는 사람들은 많은 얘기를 만들어낸다. 아마 이 때문에 이영도 씨의 다른 작품에 비해 폴라리스 랩소디를 더 좋아하는 것일 것이다. 폴라리스 랩소디는 말 그대로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쫓기고 쫓는 도피/추적행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니까 말이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이 소설의 또다른 특징이라면 작가 자신이 연재후기에서 '밀리물을 두드리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라고 토로할 정도로 전쟁 묘사가 뛰어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전작인 퓨처 워커에서 대규모 전투 장면이 나옴에도 묘사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서였는지, 아니면 이 무렵(2000년 연재였으니 99년 언저리에 썼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에 전국을 휩쓸어버린 스타크래프트 때문이었는지-벌쳐, 데스필드, 드라군 등 곳곳에 스타크래프트의 흔적도 보인다-는 모르겠지만, 폴라리스 랩소디에서는 정말 작정하고 전장을 그리고 있다. 바다에서는 전함들이 함포전을 하다가도 뱃머리를 맞대고 육박전을 펼치기도 하고, 육지에서는 온갖 지형에서 보병, 기병, 포병들이 부대 단위로 회전을 벌여서 설명을 따라 그림을 그려 가며 읽을 정도이다. 거기에 소설 막판으로 가면 온갖 초인적인 마법 유닛(;;)들이 가미되면서 재미를 더한다.

여기에 이영도 씨가 하고 싶은 말들이 주제로서 얹히게 되는데, 폴라리스 랩소디에서는 자유와 복수, 인간이 서로 상호 영향을 끼치는 것과 끼치지 않는 것에 대한 독특한 생각들이 드러나고 있다. 신앙에 관한 얘기들이라던가 하는 부분들은 말이 좀 많은 느낌도 들지만, 드래곤 라자나 피를 마시는 새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 간결하게 갈무리되었다고 생각한다.

연재 당시 처음 읽었을 때에는 그저 재미있다라는 생각만 들었었는데, 몇 해가 지나고 그의 후속작들도 읽어본 뒤에 다시 이 작품을 읽고 나니, 전작들과 이 작품의 관계, 그리고 이 작품과 후속작들의 관계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폴라리스 랩소디의 출발은 아마도 전작 퓨처 워커의 신차이 선장이었을 것 같다. 퓨처 워커에서 바다 사나이 얘기를 그리면서 '이걸 아예 메인으로 잡고 써봐도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 건 아닌지. 드래곤 라자/퓨처 워커에서 다소 비판받았기 때문인지 폴라리스 랩소디의 세상에서는 '마법'을 조금 다르게 다룬다. 물론 주문을 외우고 마법을 부리지만, 전작들이 다소 전형적인 RPG 느낌이 났다고 하면, 여기에서는 그냥 자연스런 기술의 느낌이랄까?

후속작인 '눈물을 마시는 새'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더 흥미롭다. 사람들이 서양의 것을 빌려 쓰는 판타지가 아닌 한국형 판타지가 필요하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 작가는 연재후기를 통해 "딱 한 가지만 물어보지요. 배경도 중국이고 주인공도 중국인인 구운몽은 중국적 소설입니까?"라고 짧지만 아주 강렬하게 울컥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이 때가 '한국형 판타지 : 눈물을 마시는 새'의 시초가 된 것 같다. 이영도 씨를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이것들, 그래 내가 아주 진짜 한국적인 걸 써주마!"라고 불타 오르는 모습을 상상해버렸달까.

여러 작품을 만들다보면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것 같은데 각 작품간의 인물들도 다소 연결되는 느낌이다. 멀쩡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불안정한 모습들의 키드레이번-케이건-엘시 에더리가 그렇고, 전지성에 고뇌하는 벨로린-륜 페이가 그렇고, 애교넘치는 것 같으면서도 잘 생각해보면 꽤 섬뜩한 면도 갖고 있는 율리아나-카린돌이 그렇다.

전쟁 중에 목도리 도마뱀이 나오는데, 목도리 도마뱀은 파충류이다 보니 날씨에 구애받게 되었고, 그래서 폴라리스 랩소디의 전쟁에는 날씨도 큰 변수가 되었다. 이것이 이후 눈마새에서 변온인간 종족 나가와 그의 전쟁이라는 식으로 진화된 게 아닌가 싶다. 나가의 소드락 복용을 지금껏 스타크래프트의 스팀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폴라리스 랩소디의 '초반에 폭발적인 군사단위'인 노예병과 통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고.

이래 저래 내가 현재로서 가장 좋아하는 이영도 씨의 소설인데, 앞으로 더 재미있는 것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ps : 출판본에는 '대륙 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필요했던 지도인가!
2006/12/17 00:13 2006/12/17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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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_-; 2006/12/19 18:13 Delete Reply

    싱잉플로라의 이미지가 대략... -_-; ㅋㅋㅋ

    1. Re: # HaraWish 2006/12/25 20:59 Delete

      아, 그 만화... 건들건들대는 꽃의 이미지가 일품이었는데, 주소를 잊어버렸다;

  2. # 바루 2006/12/22 13:38 Delete Reply

    다시 읽어봐야겠군요. 하루 꼬박 이것만 읽고서 느낀 건 정말 허무하다였거든요.

    1. Re: # HaraWish 2006/12/25 21:00 Delete

      헉. 하루에 읽기에는 양이 꽤 많았을텐데요. 저는 연재 때 '아, 다음 회에는 어떻게 될까?'라며 감질나게 읽어서인지, 언제 다시 잡아도 조금씩 조금씩 읽곤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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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이우일, 선현경의 신혼여행기

Posted 2006/12/16 22:20, Filed under: Aladdin
이우일 선현경의 신혼여행기 1
선현경, 이우일 지음/황금나침반
유럽으로의 신혼여행을 준비하면서, 남들은 어떻게 다니고 있을까하는 궁금함이 들었다.

하지만 마땅히 얘기를 접할 곳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혼여행이라면 어찌보면 가장 비밀스러운 여행이며, 둘만의 기억으로 간직하고 싶은 여행이라 할텐데, 이를 다른 사람에게 얘기한다는 게 쉽지는 않은 노릇 아닌가.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서점 사이트에서 '신혼여행'으로 검색했을 때 처음 눈에 띈 책이 바로 이 '이우일, 선현경의 신혼여행기'였다. 이우일 씨라면 '도날드닭'의 작가로 약간은 들어본 정도. 호기심이 동해서 집어들었다.

책을 보며 처음 든 생각은... 이 사람들 도대체 안에 무슨 얘기를 담은 것일까...하는 생각이었다.

'신혼여행기'라고 이름붙은 책이 상하권으로 나뉘어져 있고, 상, 하권을 합쳐 700쪽이 넘는 두께를 자랑한다면 누구라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해답은 이들의 신혼여행이 범상치 않다라는 점에 있다. 총여행기간 303일. 신혼집할 돈으로 배낭 두 개 사들고 비행기타고 떠버렸다. 그리고는 정교한 시간표없이 유럽과 이집트 일대(막판에 3개월 정도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보냈지만, 이건 뭐 친척집 부근이니..^^)를 말그대로 떠돌아다닌 것이다. 첫 출발인 공항에서부터 우여곡절 끝에 계획했던 파리 대신 런던으로 날아가질 않나, 아일랜드에서는 폭풍을 만나 계획보다 며칠을 더 묵기도 하고, 바다 빼고는 별 볼일 없는 이집트의 다합에서 두 달 동안 바다를 벗삼아 살기도 하는 등 이들의 여행에는 '시계'가 빠져있었다. 시간이 넉넉한 대신 여행경비가 빠듯한 탓에 이들의 여행은 결코 호화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정말로 여행을 즐겼다. 읽는 사람이 그 즐거움에 밤잠을 쪼갤 정도로.

이 책은 이들의 이런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곳곳에 유용한 정보들도 있지만, 가이드북이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까울 것이다. 선현경 씨가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 둘 풀어내고, 이우일 씨는 풍경, 만난 사람들, 여러 일들을 때로는 널널하게 때로는 엄청나게 세밀하게 그려 하나의 책으로 묶어냈다.

읽고 있노라면, 이들 부부 집에 초대받아서 여행 사진 앨범을 뒤적거리다가 '아, 그 사진은 말예요. 어디에서 찍은 건데, 그 땐 이런 일이 있었지 뭐에요~.'라는 수다를 듣는 느낌이다.

여러모로 참 부럽게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이라고 여행 후의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도 아닐텐데, 그래도 과감하게 다른 현실을 만들어 볼 생각을 하고 그걸 실행에 옮겼으니. 게다가 읽다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들은 여행하는 내내 이 책을 썼다. 몸이 피곤함에 지친 때를 제외하면 틈틈이 선현경 씨는 글을 쓰고, 이우일 씨는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딱히 일이라고 할 수도 없고, 놀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그런 활동...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 일과 놀이를 구분짓지 않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보는 사람조차 까닭없이 힘이 나기 마련이다.

비록 지금 나와 내 친구가 계획하고 있는 여행은 이들처럼 '즐기는' 여행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배낭여행, 즉 '공부하는' 여행에 가깝지만, 이들의 여행을 마냥 부러워하지는 않으련다. 이들도 처음에는 어깨에 힘 잔뜩 주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이 곳 저 곳 바쁘게 찾아다녔을테니까. 이번에 일단 여행을 다녀오면, 나중에 언젠가 현실에 묻혀 버둥거릴 때 이들처럼 잠시 이 곳을 떠보자라며 배낭을 둘러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2006/12/16 22:20 2006/12/1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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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자유 2006/12/17 02:21 Delete Reply

    언젠가 표지를 본 기억도 나는데, 정말이지 돌아와서의 뒷감당이 두려워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 것이지.
    집 장만 할 돈을 1년 여행에 다 써버리면 그 뒤는... (ㅠㅠ)

    결론은, 로또뿐? :D

    1. Re: # HaraWish 2006/12/19 16:38 Delete

      사실 돈도 돈이지만, 나는 그 '유목민' 생활을 직접 해냈다는 게 놀랍더라고.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정착한 상태에서 잠시 나들이 다녀오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니까 말야.

      로또보다는 여행 펀드라도...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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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디지털이다

Posted 2006/11/26 23:06, Filed under: Aladdin
디지털이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지음, 백욱인 옮김/커뮤니케이션북스
학부 때였나 유명하다고 해서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생각만큼 재미를 못 느끼고 반납했던 그 책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꽤 재미있게 읽었다.

현대의 필독서로 불리는 과학(?)책들이 몇 있다.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나는 아직 안 봤지만;)가 그렇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그렇고,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들도 그런 평을 받곤 한다. 어찌 보면 과학시대를 넘어서 정보기술 시대로 넘어가는 마당에 '디지털이다'라는 책은 또 하나의 필독서가 아닌가 싶다.

흔히 '디지털'이라고 하면 매일 매일 신기술, 신제품이 나타날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빠른 분야라고 생각을 하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이런 디지털에 관해 10년도 전에 얘기한 책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책장을 넘기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책은 디지털의 현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있지만, 멋진 신세계가 나타날 듯이 장밋빛으로 온통 찬양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제점들을 들먹이며 지레 겁을 주면서 이러저러하게 해야 한다고 큰 소리치지도 않는다. 그저 1 다음에 2가 왔으니 그 다음에는 3이 온다는 식으로 속성을 파악하고 그 다음 단계를 말해줄 뿐이다.

당시에는 정말 '이런 세상이 올까?'라고 느껴졌겠지만, 네그로폰테가 얘기한 VOD, 내로우캐스팅, 수용자 중심의 콘텐츠 생산 등은 이미 현실에 나타나고 있다. 당장 우리나라에서 봐도 스카이 위성 TV는 리모컨으로 번호를 넣으면 원하는 프로그램을 따로 구입해서 볼 수 있고, 한 때 인기를 끌었던 mp3 방송이 지나고 현재는 포드캐스팅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개인 맞춤형 검색엔진이나 뉴스 사이트들이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10년 전의 얘기이다 보니 지금 세상에는 벌써 구닥다리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다. 무선으로 수 메가씩 전송하는 세상인데, 네트워크 수단으로서 전화선이나 케이블 선, 광섬유 등을 놓고 비교할 때는 격세지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디지털이라는 기술,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의 속성에 대해서는 정말 잘 파악하고 있다. 책에서 얘기하는 디지털의 속성을 잘 파악한다면, 신기술이 나왔을 때 이런 기술은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며, 저런 기술은 계속 발전하게 될 것이다라는 예상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wired라는 잡지에 칼럼 식으로 기고한 것을 묶은 것이라서 글 하나하나가 호흡이 짧아서 짬날 때마다 쉬엄쉬엄 쉽게 읽을 수 있다. 10년도 넘은 책이라서 현대에 그대로 써먹기는 힘들겠지만, 분명 읽어볼 가치는 있다. 비유하자면 수능 시대에 재빠르게 나오는 문제집은 아닐지언정 수학의 정석쯤 된다고나 할까.

네그로폰테 아저씨. 요새는 빈부에 따른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해, 개발도상국 어린이의 교육용으로 10만 원짜리 노트북 프로젝트 에 열심이라고 하시던데, 시간 되시면 '디지털이다'의 속편을 써주시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텐데….

2006/11/26 23:06 2006/11/26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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